[WBC 결산] 2015 오타니, 2023 사사키…19승19패 한일전, 균형 이미 깨졌다

아시안게임 제외한 최근 한일전서 6연패
일본 150㎞ 던지는 영건들 등장…한국은 마운드 기근

일본 야구대표팀 오타니 쇼헤이.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도쿄=뉴스1) 권혁준 기자 = 한국이 오타니 쇼헤이를 처음 마주한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프리미어12에 출전한 오타니는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140㎞대 슬라이더를 던지며 한국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당시 4강에서 '역전 드라마'를 쓰며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만 21세의 '영건' 오타니를 직접 상대한 한국은 '위기 의식'을 느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번엔 또 다른 영건 사사키 로키가 등장했다. 사사키가 한국전에 등판한 것은 아니지만 160㎞를 넘나드는 직구를 던지는 만 22세 영건의 존재는 한국에겐 너무도 부러운 대상이었다.

2015년의 오타니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던 한국야구는, 8년동안 얼마나 성장했을까. 언제까지 일본 투수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해야만 할까.

이번 대회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의 성적표는 너무도 처참했다. 야심차게 '4강'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호주에게도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였다.

한일전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간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를 대하는 자세는 "수준은 높지만 해볼만하다"는 것이었다. '한일전'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넘지 못할 상대로 여겨질 정도로 격차가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본 대표팀 사사키 로키.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하지만 이번 대회의 한일전은 달랐다. 단순히 4-13이라는 큰 점수차 때문이 아니다. 선수들의 기량 격차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벌어져 있었던 것이 문제다.

일본은 일찌감치 오타니와 사사키, 다르빗슈 유,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 1라운드에 등판할 4명의 선발투수를 확정지었다. 언론에 굳이 공개를 꺼리지도 않았다.

한국전에 등판한 다르빗슈 이후로는 이마나가 쇼타, 우다가와 유키, 마쓰이 유키, 다카하시 히로토 등이 이어서 등판했다.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마다 기본 150㎞의 공을 뿌렸고 칼같은 제구까지 갖췄다.

이 중 우다가와는 만 25세, 다카하시는 만 21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다. 선발 로테이션으로 일찌감치 빠진 사사키와 야마모토(24) 외에도 20대의 어린 선수들이 마운드를 책임졌다.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4대13 대패를 당한 대표팀 선수들이 관중석에 인사 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반면 한국은 만 35세의 노장 김광현이 선발투수에 오른 뒤 원태인, 곽빈, 정철원, 김윤식, 김원중, 정우영, 구창모, 이의리, 박세웅 등 총 10명이 올랐지만 모두 힘겨워했다. 원태인, 곽빈, 정철원, 김윤식, 정우영, 이의리 등이 20대 초중반의 '영건'으로 리그에서 각광을 받았지만 일본 타자들을 상대론 역부족이었다.

타자 역시 수준차가 컸다. 메이저리그 최우수선수(MVP) 오타니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곤도 겐스케와 요시다 마사타카, 오카모토 가즈마 등이 한국 투수들을 쉽게 공략했다. '거포 군단'으로 구성된 한국의 타선이 맥을 못춘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번 패배로 한국은 일본과의 국제대회 전적에서 19승19패 동률을 이루게 됐다. 1998년 이후 프로선수들이 출전한 대회를 기준으로 한 전적이다.

'동률'이라지만 이미 양국의 전력차는 크게 기울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은 2015년 프리미어12를 시작으로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9 프리미어12, 2021년 도쿄올림픽, 이번 WBC까지 굵직한 대회에서 모두 패했다.

중간에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2연승을 거뒀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은 아시안게임 야구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을 파견한다.

야구대표팀 김광현.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아시안게임까지 포함한 전적이 동률이니, 이미 전적 상으로도 밀리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단순 전적이 아니라 '실력의 격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은 해마다 '슈퍼루키'로 일컬어지는 대형 신인이 나오는 반면, 한국은 고교무대를 평정한 대형 신인도 몇 년 동안 프로 적응에 애를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2006년 WBC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 WBC까지 한동안 한국야구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건 '천재'들의 힘이 컸다. 류현진과 김광현, 김현수와 이대호처럼, 한국 야구 현실에서 좀처럼 나오기 어려워보였던 재능들이 함께 뭉친 결과였다.

어쩌면 한국야구는 그동안 '천재'들의 활약에 취해 제대로 된 자가진단을 못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천재들이 나이를 먹고 물러날 때가 되면서 몇 년 동안 되풀이된 '참사'는 지난 영광이 온전한 우리 것이 아니었음을 드러냈다.

애석하게도 야구는 축구와 달리 다른 나라와의 기량을 냉정히 비교할 기회가 많지 않다. 정기적인 평가전 등이 진행되지 않기에 몇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국제대회가 몇 없는 기회다.

이번 '참사'는 아프지만 그와 동시에 좋은 약이기도 하다. 선수도, 리그도 '대오각성'의 자세로 변화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19대19의 균형은 순식간에 기울 수밖에 없다.

starbury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