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정치수단 쓴 전두환…야구·축구 프로화, 올림픽 유치 '아이러니'

[전두환 사망] 독재 향한 국민 관심 환기 '3S' 일환 스포츠 육성
1981년 6개 야구단 출범 이어 축구·씨름·농구 등 흥행종목 키워

프로야구 시구를 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대통령기록관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23일 향년 90세 일기로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유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출범 등 한국 스포츠사의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스포츠 발전이라는 순수하고 건전한 목적이 아닌, 스포츠를 정치수단으로 악용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79년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통한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 전 대통령은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에 올랐다.

정통성이 약한 그와 신군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른바 '3S'(스포츠·섹스·스크린) 정책을 앞세워 정치를 향한 국민적 관심을 멀게 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신선을 돌리고자 했다.

당시 고교야구의 인기가 뜨겁고 실업야구의 지역 연고 기반이 닦여 있는 걸 고려해 야구가 가장 먼저 프로화의 첫발을 뗐다. 청와대 주도로 1981년 여름 창설 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해 12월11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창립총회를 열고 6개 구단 체제로 프로야구의 출발을 알렸다.

실업야구를 프로로 돌린 셈이었으니 초창기는 사실 무늬만 프로였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신군부의 구상대로 프로야구에 열광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82년 3월27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MBC와 삼성의 프로야구 첫 경기에 시구자로 나서 상징성을 더했다.

프로야구가 연착륙하자, 전 전 대통령과 신군부는 1983년 프로축구를 출범시켰는데 졸속 행정 끝에 프로 2개 팀과 실업 3개 팀의 불완전한 체제로 시작했다. 이후 프로씨름, 농구대잔치 카드를 차례로 꺼내는 등 3S 정책을 강화했다.

전 전 대통령은 외부로도 눈길을 돌렸다. 군부의 폭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면서 더 강력한 통치 수단으로 올림픽 유치를 착안했다.

1988 하계 올림픽의 서울 유치에 총력을 쏟았고, 19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개최권을 따냈다. 한국의 사상 첫 국제종합대회 유치로, 국제 스포츠사의 한 획을 그은 일이었다.

냉전 시대의 영향으로 1980년과 1984년 올림픽은 반쪽짜리로 치러졌으나 1988년에는 미국과 소련이 동시에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은 서울에서 평화 올림픽을 열어 의미를 더했다.

프로축구 경기를 관전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대통령기록관 제공) ⓒ 뉴스1

서울 올림픽 개막 2년을 앞둔 1986년에는 예비 대회 성격으로 하계 아시안게임까지 유치했다. 아시안게임 국내 개최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유치로 대외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 스포츠강국으로 발판을 마련했으나 어두운 이면도 많았다.

특히 서울 미관 개선을 이유로 무허가 주택을 강제 철거하고, 이에 쫓겨난 이들이 한데 모이자 마을 바깥쪽에 거대한 울타리를 쳐 외부에서 판잣집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또 부랑자와 노숙자를 수용소에 가두고 관련 시설에 보조금을 지원, 형제복지원 사태의 원인도 제공했다.

rok195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