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기다리는 1만명…그 앞에는 좌우, 여야도 없다" 2기 진실화해위 1년
[인터뷰] 정근식 2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조사관 100명 정도 늘리고 조사기간도 확대해야"
- 정혜민 기자, 강수련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강수련 기자 =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오는 10일 출범 1주년을 맞는다. 찬 바람이 불던 지난해 12월10일 아침부터 진실화해위 건물(서울 중구 충무로 3가) 앞에 줄을 서 1번으로 진실규명 신청을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비롯,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실규명을 기다리고 있다.
5월27일 첫 조사개시 이후 6개월이 지났다. 진실화해위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상처를 치유해주길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제 속도감 있는 조사를 기대한다.
3년 활동기한(연장시 최대 4년) 안에 그리 많지 않은 조사관들이 그 많은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지, 내년 대선으로 새 정권이 들어서면 조사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크다. 8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사무실에서 정근식 위원장을 만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점도 짚어보았다.
-진실화해위 1주년을 맞이한 소감은.
"막중한 자리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주 경산 코발트 광산·대구 가창골·경산 박사리 학살 피해자의 유족들을 만났다. 유족분들이 '처음으로 국가를 대표해서 우리를 찾아오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작은 위로나마 할 수 있어서 보람 있지만 제가 가진 권한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고 계셔서 죄송하기도 한 마음이다."
-그간 많은 피해자와 유족들을 만났다고 들었다.
"피해자와 유족 간담회나 면담을 약 70회 진행했다. 부산 형제복지원, 선감학원을 방문했고 부마항쟁 기념식, 4.3 추모식, 서산개척단 추모제에도 갔다. 형제복지원의 피해 여성이 '고향이 진주인데 형제복지원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 일부러 전북 삼례에 시집가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마음이 아팠다."
-조사개시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그간 어떤 성과가 있었나.
"우선 주요 사건들은 대부분 조사를 시작했다. 신청 접수도 1기 진실화해위 때의 신청 건수를 넘어섰다. 어제(7일)는 처음으로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사건 2건의 진실이 규명됐다. 이제 본격적인 진실규명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내년 초부터는 비교적 많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분기에 1번씩 중간결과 보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실화해위는 1주년을 3일 앞둔 지난 7일 '이재실의 목포상고 학생운동' '김언배의 대한신민단 군자금 모금운동' 등 2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 출범 이후 첫 성과이다. 위원 간의 갑론을박은 있었지만 만장일치 의결이었다.
지난달 기준 1만1397건의 진실규명 신청이 있었다. 이 중 절반 정도가 조사 개시됐다.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범위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권위주의 통치시기 인권침해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조사관 130명 남짓이 3년 안에 처리하기에는 사건이 너무 많다는 우려가 크다. 우리 진실화해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을 참고해 만들어졌는데, 남아공의 경우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관련 사건만을 조사했다.
-조사관 수에 비해 접수 사건이 너무 많다는 걱정도 나오는데.
"신청 건수가 얼마나 될지 몰라 인력이 1기 때보다 적게 결정됐는데 이미 1기 신청 건수를 넘겼고 앞으로 1년 더 조사 신청을 받는다. 얼마 전 조직진단을 했는데, 조사관 수를 100명 정도 더 늘려야 충실한 조사가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력 확충을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3+1년이라는 기한과 조사 속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코로나 등 악조건 속에서도 조사관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집단적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 큰 범주가 있고 그 안의 개별 사건으로 나뉜다. 한 번에 규명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조사개시를 하고 60% 정도 신청인 조사를 했다. 다만 활동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 조사가 계속될 수 있도록 과거사연구재단도 설립해야 한다."
-2기 진실화해위 출범 당시 아동과 여성 문제도 두루 다루겠다고 이야기했다. 관련 조사가 진행되고 있나.
"아동 문제의 경우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수용시설 관련 진실규명 신청이 들어와 있다. 또 30여 개 아동수용시설 문제와 관련해 용역조사를 진행 중인데 결과가 나오면 직권조사 여부를 검토할 것이다. 다만 여성 관련 사건은 공식적인 진실규명 신청이 없었다. 기지촌이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신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심포지엄을 열고 대응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1기 진실화해위에는 권위주의 통치시기 인권침해 사건 조사신청이 많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피해자들은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가 2차 피해, 보복을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다행히 2기에서는 관련 조사신청이 늘었다. 하지만 성착취,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은 1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과거사 정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관 이름에 '과거사'가 들어가서 그렇지, 희생자들에게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또 인권과 평화라는 것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의 삶이 될 수 있도록 과거의 잘못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다만 진실규명의 결과가 과거갈등 재현이 아닌 치유, 화해 나아가서 국민통합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내년에 꾸려질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진실화해위의 활동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지만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또는 유족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더 크다. 8명의 위원도 여당, 야당에서 4명씩 선출한 데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안을 표결이 아니라 합의와 만장일치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진실 앞에는 좌우도, 여야도 없다."
-앞으로 진실화해위가 나아갈 방향은.
"'진실' 분야는 조금 더 제도화됐다. '화해'는 제도화가 약하다. 화해에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 우선 유해발굴을 적극적으로 하고, (북한 등) 적대세력의 잘못인 경우에도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점에 사과와 위로를 해야 한다. 또 종합적인 배·보상 방안이 필요하다. 과거사정리법에 배·보상이 포함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12월9일까지 진실규명 신청기한인데 최대한 용기를 내서 신청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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