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탑차 개조후 하루 수백번 허리 굽혀"…택배기사들, 집단산재 신청
허리통증 늘어…10명 중 7명 근골격계 질환 증상
"지하 안전성, 저상탑차 이용 대책 논의 필요해"
- 강수련 기자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 = "도저히 못 일어나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하루 입원하고 바로 일하러 나왔죠."
2011년부터 택배 일을 해 온 권지훈씨(38)의 말이다. 김포 신도시에 지상공원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상 출입이 제한되기 시작했고, 권씨는 2014년 자비 380만원을 들여 차량을 저상탑차로 개조했다.
탑차를 1.8m에서 1.24m로 개조한 뒤부터 권씨는 허리 통증을 달고 산다. 하루 평균 450개의 물건을 배송하려면 하루에도 수백 번 허리를 굽혔다 펴는데, 이제는 탑차 안에서 물건을 정리할 때에도 허리를 펼 수 없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복대와 무릎 보호대를 차고 시술을 받으며 버틴다.
통증을 참고 일해 온 권씨는 1월 초 병원진단을 받은 뒤 다른 택배기사들과 함께 집단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저상탑차 이용으로 인한 집단산재 신청은 최초다.
◇택배 배달에 수백번 허리 굽혀
27일 뉴스1이 권씨와 함께 아파트 3개 동을 돌면서 33건의 물건을 배송했다. 물건을 탑차에 실어 정리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물건을 동·호수별로 나눠 구르마에 싣고, 각 물건을 아파트 문앞까지 배송하는 동안 권씨는 최소 100여 차례 허리를 굽혀야 했다.
차량 높이가 낮아지면서 실을 수 있는 물량도 적어졌다. 아파트와 물류 터미널을 3~4차례 왕복하게 됐고 그로 인한 업무 강도도 세졌다.
2017년부터 택배 일을 해온 강민현씨(36)도 비슷한 상황이다. 강씨는 2018년에 저상탑차로 차량을 개조하고 4년째 저상탑차를 타고 있다.
184cm의 장신인 그가 1.24m의 탑차 안에서 물건을 정리하려면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어서 정리할 수밖에 없다. 강씨는 "허리를 피려면 무릎이 고생하고, 무릎을 살리려면 허리가 고생한다"며 토로했다.
강씨는 허리 디스크 초기 진단도 받았지만, 신경차단 주사를 맞고 버티고 있다. 성탄절을 앞두고는 하루 750건의 물건을 배송하고 앓아눕기도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택배 물량이 늘어서 업무 부담이 커졌지만,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몰라 구역을 섣불리 나눌 수 없다"며 "생계를 위해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일자리 잃을까 봐 치료 못 해
저상탑차 이용으로 인한 질환은 연구에서도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7월 저상탑차가 매우 높은 수준의 근골격계 질환, 산업재해 유발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로 택배노조가 지난달 CJ 김포지회 택배노동자 35명을 대상으로 한 문진 결과, 일반·하이탑 차량 사용 노동자들의 증상호소율은 58.3%에 달했으며, 저상탑차 사용 노동자들의 경우 72.7%로 더욱 높았다.
이렇게 온몸이 아프지만 이들은 치료를 쉽게 받지 못한다. 치료를 받는 동안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서다.
배철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김포지회장은 "치료를 받는 동안 자리를 비우면 대리점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다"며 "다른 구역으로 가야하는 데 부담을 느껴 치료를 미루게 된다"고 설명했다.
권씨는 "개인으로 산재를 신청하려고 해도 평소 질환인지, 일할 때 아픈 건지 등을 까다롭게 따져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며 "산재가 인정돼도 치료 후 내 자리가 사라질까봐 두려워 산재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노조는 문진대상자 35명 중 22명에 대해 1월 초 병원진단을 받고 집단 산재 신청을 할 예정이다.
배 지회장은 "집단 산재로 인정을 받으면 치료를 받고 온 뒤에도 근무지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며 "정부에서 산재 인정에 따라 사측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면 회사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저상탑차 사용, 중단하거나 보상 늘려야
지난 4월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 출입문제가 불거지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부, 노동부, 택배사, 대리점, 노조가 참가하는 '지상공원화아파트협의체'가 구성됐다.
그러나 여전히 저상탑차 이용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노조는 정부와 사용자인 택배사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는 저상탑차 운행을 중단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거나, 저상탑차 이용이 불가피하면 보상을 늘리라고 말한다.
권씨는 "안전을 위해 지상공원형 아파트가 생겼지만 컴컴하고 사각지대가 많은 지하주차장도 (주민들에게) 결코 안전하지 않다"며 "지상과 지하 중 어떤 곳이 안전한지, 안전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등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상공원화 아파트를 지을 때도 지하 1층만큼은 3.2m 높이로 지어 하이탑 차량도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불가피하게 저상탑차를 이용해야 하면 부가적으로 인센티브를 주거나 수수료를 더 얹어주는 방안도 있다"고 덧붙였다.
배 지회장도 "택배사뿐만 아니라 택배기사, 정부 등이 함께 비용을 부담해 저상탑차 이용을 줄이자는 것"이라며 "거점배송 등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는 전날(28일)부터 △택배요금 인상액 공정분배 △별도요금 56원 폐지 △부속합의서 전면 폐지 △저상탑차 대책 마련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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