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노동 시달리던 마필관리사 자살

경마노조 "노동부가 나서 불합리한 노동환경 개선해야"

12일 경찰과 전국경마자마필관리사노동조합(이하 경마노조)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4시30분께 경주 보문단지의 한 모텔에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마필관리사로 7년동안 일해온 박모씨(35)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직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박씨는 지난 5일 오전 마방 숙소에서 후임 마필관리사에 대해 업무지시를 하면서 언쟁을 벌이다 상대를 때려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되자 마방을 나와 연락을 끊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경마노조는 "박씨는 폭행사고로 순간 자살충동을 느껴 자살한 것이 아니다"며 "마필관리사로 일해온 7년동안 엄격한 마방 문화와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자살 유혹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폭행사건으로 5년 뒤 조교사 시험을 보더라도 마사회가 진행하는 최종면접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까지 더해져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는 마필관리사 220여명이 910마리 말을 관리해왔다. 그러나 박씨가 속한 조는 3명이 17마리를 관리하고 있어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박씨가 남긴 유서에는 "한 달에 12번 당직을 서야 했다"며 "7년동안 5번의 골절과 한 번의 뇌진탕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병원에 입원하면 회사에서는 '언제 나오느냐'고 독촉해 쉴 수도 없었다"고 적혀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마필관리를 하청업체에 맡기면서 조교사가 마필관리사의 고용과 임금까지 모두 결정하는 구조로 돼있다.

경마노조가 2008년 임금을 조사한 결과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마필관리사 임금은 1인당 29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조교사를 거치면서 실제 마필관리사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서울경마공원은 (사)조교사협회가 마사회로부터 1인당 500여만원의 마필관리사 임금을 받아 조교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때문에 마필관리사 임금은 1인당 평균 430만원 수준이다. 마필관리사 채용도 조교사협회에서 진행한다. 

윤창수 경마노조 위원장은 "부산은 조교사가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다보니 조교사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늘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조교사들은 우승 상금을 받아야 임금을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고가 치열한 경쟁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마사회는 마필관리사들이 열악한 구조에 놓여있는 상황을 알면서도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일이라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마노조는 고용노동부가 나서 마필관리사들의 노동착취와 산업재해의 실태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윤 위원장은 "경마업 산재율은 15%로 전국평균 산재율 0.7%보다 20배 이상 높다"며 "이마저도 공상처리를 유도해 그나마 산재율을 낮춘 것인 만큼 고용노동부가 실태조사에 나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난해 3월 박진희 기수가 '기수생활이 너무 힘들고, 냉혹한 승부의 세계가 비정하게 느껴진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보다 앞서 2005년 3월에도 이명화 기수가 낙마사고로 큰 부상을 입어 훈련에 차질을 빚은 데다 체중감량에 대한 스트레스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  

박진희 기수 사망사건 이후 부산경남경마본부는 기수들에 대한 처우개선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나온 개선책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번에 자살한 박씨는 유서에서 "이 자그만 목숨 하나 하나 바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냐"고 남겨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박씨 유가족은 경남 장유의 한 병원에 빈소를 차린 뒤 "마필관리사의 처우개선 없이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하며 발인 날짜를 무기한 연기해 놓고 있다.

l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