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공직비리 심각성, 그는 몰랐다
- 한종수 기자

(서울=뉴스1) 한종수 기자 = "사실은, 국회 전현직 보좌관들을 접대한 겁니다"
17일 건설근로자공제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공제회 임원의 황당한 실토는 의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까지 아연실색케했다.
공공기관인 공제회 직원이 전·현직 국회의원 보좌관들에게 '골프 접대'를 해왔다니…. 그 돈의 출처마저도 자신의 호주머니가 아닌 업무추진비였다.
이날 국감에서는 밀실투자, 원정도박 의혹 등 건설근로자공제회의 각종 비리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비리 종합선물세트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340만 건설노동자들이 퇴직에 대비해 피땀 흘려 모은 적립금을 공제회 임직원들은 자신의 쌈짓돈 마냥 써왔다.
공제회 자산을 갖고 리스크가 큰 대체투자 상품 등에 투자했다가 수백억원 손실을 보는 등 대형사고를 쳐놓고도 임직원들은 "우린 잘했다"며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스폰서를 받고 해외 원정도박 의혹이 제기됐는가 하면 임원들은 평일이나 주말 가리지 않고 골프장을 드나들며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감장에 출석했던 한 임원은 "업무추진비를 그리 써도 되느냐"는 의원의 호통에 오히려 "저는 골프칠 줄 모른다. 제 이름을 빌려 친구와 친지들이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의 도용의 심각성을 모르고 답변한 것이다. "친구나 친지에게 명의를 빌려준 게 사실이냐"는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해당 임원은 모든 국민들을 분노케할 만한, 황당한 실토를 쏟아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국회에서 20년 동안 근무했는데 골프를 친 건 전현직 보좌관들입니다. 전 카드로 계산만 했습니다"라고 이실직고했다.
이날 국감 막바지 즈음, 논란의 중심에 선 해당 임원은 위원장에게 접대 명단을 제출했으나 전직 보좌관이 전부였을 뿐 현직 보좌관은 없었다.
이제 공제회를 향한 칼 끝이 더 매섭고 날카로워야 한다는건 자명한 사실이다. 심각성을 모르고 비리·관행을 좇는 공직자들이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부정화 기능을 상실한 공제회에 더 이상 기대를 거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 돼 버렸다. 무엇보다 공제회에 대한 처벌이 단순 경고나 임직원 해임 수준에 그칠 문제가 아니란 점도 명확해졌다.
골프 접대를 해왔다는 건, 뇌물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골프 접대를 받아온 전·현직 국회의원 보좌관들도 엄히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리 연결고리에 국회의원들은 없었는지 골프 접대가 또 다른 상납구조를 낳은 것은 아닌지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당장 검찰수사를 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말이 허언이 되지 않길 기대해본다.
jepo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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