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싫어" 영화 본 뒤 한 달 넘게 준비…부친 살해·유기 반인륜적 범죄

[사건의 재구성] 모친 여행 틈타 범행 계획…은폐 시도도
심신미약 놓고 1·2심 판단 엇갈려…징역 20년→15년 확정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많이 먹지 마라." "영어 단어를 외워라." "용돈 기입장을 작성해라."

30대 남성 김 모 씨에게 아버지의 이런 말은 모두 잔소리였다.

김 씨는 평소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을 걸거나 생활 습관을 지적하는 것을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어머니와 달리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한다고 여기며 반감을 키웠다.

범행을 마음먹은 것은 2023년 3월이었다. 서울 중랑구 자택에서 아버지가 손가락에 바를 연고를 가져다 달라고 하자 김 씨는 자신에게 일부러 화를 내며 심부름을 시킨다고 받아들였다.

김 씨는 아버지를 살해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했다. 마침 두 달여 뒤 어머니가 친정 식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단 둘이 남는 이 기간에 범행을 계획했다. 한 영화에서 흉기로 사람을 숨지게 하는 장면을 본 뒤 집에 있던 흉기를 범행 도구로 정했다.

범행 후 피해자를 은닉할 장소도 찾았다. 아파트를 돌아다니다 배수용 집수정(물탱크)의 문이 항상 열려 있고 안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청 테이프와 물티슈 등을 차례로 구입해 집수정 근처 계단에 숨겨두는 등 한 달 넘게 범행을 준비했다.

어머니가 제주도로 떠난 다음 날 자정쯤 김 씨는 자택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 범행 후에는 현장을 정리하고 아파트 현관과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청 테이프로 가린 뒤 피해자를 집수정으로 옮겼다.

함께 살던 70대 부친을 살해한 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김모씨(30). 2023.5.30 ⓒ 뉴스1 유승관 기자

김 씨는 체포 직후 첫 조사에서는 범행을 부인했다. 이튿날 어머니가 동석한 조사에서는 진술을 번복해 범행 동기와 준비 과정, 숨진 피해자를 숨긴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재판에서는 김 씨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는지가 쟁점이 됐다. 김 씨는 6세 때 자폐성 장애로 등록됐고 국립법무병원 정신감정에서도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지적 불균형으로 사물 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손상된 심신미약 수준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1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는 시기를 골라 범행을 계획하고 도구와 은닉 장소를 미리 준비한 데다 범행 후 CCTV를 가리는 등 발각을 피하려 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1심 재판부는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존속살해죄는 우리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반사회적 범죄"라며 계획성과 범행 후 정황 등을 지적했다. 다만 범행을 인정한 점과 자폐성 장애가 있는 점, 어머니가 선처를 탄원한 점 등을 참작했다.

항소심은 정신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김 씨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인정해 징역 15년으로 감형했다.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은 유지됐다.

김 씨가 형이 무겁다며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24년 8월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범행 동기와 수단, 결과,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징역 15년이 심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