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2030은 '남대문시장 풀코스'…그릇·사우나템 사러 '북적'
'어르신 공간'서 '2030 핫플'로…3000원 접시 사고 갈치골목 향해
"경제력 부족한 청년층, 놀거리 찾아 시장까지"
- 안소연 수습기자,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안소연 수습기자 신윤하 기자
"요새 SNS에 남대문시장이 엄청 떠요. 그릇 상가·옥반지·사우나 용품 등 남대문시장이 지금 엄청 유명해졌어요."
27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조우리 씨(33·여)는 목욕 수건, 비누 등 '사우나템'이 한가득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조 씨는 저렴한 가격에 사우나 용품을 사고나서, 이번엔 옥반지를 사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SNS에 사우나용품과 남대문 그릇, 꽃시장 등이 남대문 코스로 많이 뜬다"며 "옥반지에 그릇, 말랑이, 잠옷까지 많이 사러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SNS에서는 '남대문시장 총정리 코스' '남대문 가성비 쇼핑' 등 남대문시장의 놀거리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확산하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간을 보낼 수 있단 이유로 전통시장이 다시 젊은 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릇 도매 상가는 남대문시장 유행의 시작으로 꼽힌다. 이날도 남대문시장에서 그릇을 파는 A 상가는 오전부터 수십 명의 손님들로 북적여 복도를 지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곳은 과거 혼수를 찾는 예비부부의 발길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 여성 등이 매장 안을 채웠다.
SNS에서 남대문 그릇 도매 상가를 소개하는 게시글을 보고 이곳을 찾은 임진주 씨(31·여)는 "귀여운 그릇들을 싸게 살 수 있다고 해서 왔다"며 "오후에는 사람이 몰릴까 봐 일부러 일찍 왔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인파가 더 많아져서 복도를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다. 남대문 그릇 도매 상가 내 인기 매장인 현대기물 관계자는 "요새 젊은 손님들이 많고 주말엔 커플 단위로도 많이 온다"며 "특히 자취 요리 같은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배달 음식을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먹으려는 1인 가구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그릇 가게 우주상사 사장 박 모 씨도 "토요일에는 걸어 다니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강조했다.
남대문시장이 젊은 층의 주목을 받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저렴한 가격이다. 백화점이나 소품 숍에서 판매하는 것과 동일한 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그릇 도매 상가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제품이 진열된 매장 안쪽으로 손님들이 몰렸다. 가장 저렴한 제품은 3000원부터 시작했고 손바닥보다 큰 도자기 접시도 1만 원 이하에 구매할 수 있었다.
대학생 윤 모 씨(22·여)는 "SNS에서 추천하는 다른 그릇들은 비싸다"며 "여기는 똑같은 제품도 더 싸게 살 수 있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이시은 씨(21·여)도 "가격도 싸고 다양한 제품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릇뿐만 아니라 이 일대의 꽃시장과 액세서리·사우나 용품 상점 등도 주목받으면서, 남대문시장 자체가 젊은 층에 더욱 각광받고 있다.
남대문시장이 저렴한 가격으로 쇼핑과 식사까지 할 수 있는 하나의 '풀코스'가 됐다는 게 방문객들의 설명이다. 시장에 방문해 저렴한 가격에 여러 용품을 쇼핑하고, 도보 5분 거리에 갈치조림 골목과 칼국수 골목 등에서 식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릇을 둘러본 뒤 인근 맛집을 찾을 예정이라는 직장인 박설희 씨(31·여)는 "남대문이 그릇으로 유명하지만, 사우나 용품 등도 같이 유행하고 있다"며 "도보 5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아 여러 곳을 구경하기 좋다"고 말했다.
이날 남대문시장 내 한 사우나용품점에도 약 1시간 동안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시장 상가 안에 자리한 그릇 가게들과 달리 야외에 위치한 사우나용품점엔 더운 날씨에도 10여명의 손님이 모여 사우나 용품을 살펴보고 있었다. 때수건과 때비누, 목욕 가방, 괄사 등이 온라인에 사는 것보다 1000원~2000원씩 싸다는 게 손님들의 설명이었다.
쉬지 않고 손님을 응대하던 매장 직원은 최근 젊은 손님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30·40·50·60대가 주로 찾았지만 최근에는 2030세대 손님이 많아졌다"며 "최근 2030세대가 웰니스와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여름철 수영장이나 야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 피부 관리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우나용품점 옆 말랑이 가게에도 SNS를 타고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말랑이 가게 사장은 "요즘은 유튜브나 SNS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며 "예전에는 초등학생 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 여성들로 가게가 꽉 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 좋은 놀거리를 찾는 젊은 층의 수요로 인해 남대문시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냉면 한 그릇도 1만원이 넘는 고물가 시대에 경제력이 부족한 젊은 층이 도심에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예전엔 중장년층의 공간이었던 전통시장까지 2030이 찾게 됐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단순히 최종적인 소비 제품을 획득하는 데 관심이 있다기보다 소비하는 과정 자체를 경험하면서 소비의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는 특징이 있다"며 "큰돈을 들이기에는 경제적으로 여력이 없기 때문에 경험하고 시장에서 저렴하게 체험하면서 놀거리나 즐길 거리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남대문시장은 가성비가 좋으면서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다 보니 2030세대가 마치 보물창고에 들어온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며 "남대문시장도 소비자가 한곳에서 다양한 상품을 충분히 구경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특색 있는 상품군을 한데 모으는 방식이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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