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매직' 없었다…전국 35도 찜통 속 막바지 피서 행렬(종합2보)

서울 청계천부터 전국 계곡·동굴까지 피서객…해수욕장은 한산
대구·경북 폭염경보 확대·제주 전역 열대야…서울도 한낮 33도

서울 전역에 폭염 주의보가 발령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2026.8.23 ⓒ 뉴스1 최지환 기자

(전국=뉴스1) 소봄이 기자 =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절기상 '처서'(處暑)인 23일에도 전국 곳곳에서 35도 안팎의 찜통더위가 이어졌다.

밤사이 제주와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나타났고, 날이 밝자 다시 기온이 치솟았다. 대구·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폭염주의보가 폭염경보로 강화됐다.

휴일을 맞은 시민들은 계곡과 국립공원, 연중 서늘한 동굴로 향했다. 한낮 바깥 활동을 피해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도서관에서 책과 음악을 즐기는 '북캉스'족도 눈에 띄었다. 반면 이날 폐장하는 경북 포항지역 해수욕장은 한여름 같은 폭염에도 비교적 한산해 상인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통상 처서를 전후해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다는 뜻에서 이른바 '처서 매직'이라는 말이 쓰인다. 그러나 이날은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속담까지 무색할 만큼 무더웠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 일대에도 더위를 피해 물가와 그늘을 찾은 시민들이 몰렸다. 서울의 이날 낮 최고기온은 33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보된 가운데 오후 1시 청계천 인근 기온은 기상청 지역별상세관측자료(AWS) 기준 31.4도를 기록했다.

친구와 청계천을 찾은 이 모 씨(32)는 "아침저녁으로는 덜 덥지만 낮에는 여전히 한여름"이라며 "처서가 왔다기보다 동남아가 서울까지 출장 왔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에서 8살 아들과 온 40대 이 모 씨·정 모 씨 부부도 "너무 더워서 처서가 온 줄도 몰랐다. 오히려 다시 더워진 것 같다"며 "올해는 더위가 오래간다기보다 강도가 훨씬 세진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2년간 처서 무렵 늦더위도 두드러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4년 8월 하순 전국 평균기온은 27.1도로 역대 2위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27.8도로 역대 1위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 처서인 8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일평균기온은 사흘 연속 해당 날짜 기준 역대 1위를 기록했다.

23일 오전 찾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의 아중호수도서관은 더위를 피해 피서를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2026.8.23 ⓒ 뉴스1 장수인 기자

대구·경북에서는 밤부터 더위가 이어졌다. 밤사이 포항과 울릉도에서 열대야가 나타난 데 이어 낮에는 달성·고령·칠곡 등의 기온이 35도 이상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오전부터 더위의 기세도 거셌다. 오전 10시 기준 체감온도는 포항 33.1도, 대구 32.6도를 기록했다. 기상당국은 일부 지역의 폭염주의보를 폭염경보로 격상하는 등 특보를 강화했다. 처서를 맞아 더위가 물러가기는커녕 일부 지역에서는 한층 강해진 셈이다.

제주는 섬 전체가 밤새 더위에 시달렸다.

제주 북부의 밤 최저기온은 27.8도에 달했고 서귀포 27.4도, 성산 27.2도, 고산 26.8도를 기록하며 전 지역에서 열대야가 나타났다. 제주기상청은 당분간 해안을 중심으로 밤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충북에서도 도내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낮 최고기온이 청주 35도, 증평·옥천·영동 34도, 단양·충주·제천·괴산·보은 33도까지 올랐다.

제천과 단양의 주요 리조트에도 가족 단위 관광객이 몰렸다. 특히 단양 고수동굴과 온달동굴, 천동동굴에는 바깥의 찜통더위를 피해 서늘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피서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 동굴은 한여름에도 내부 온도가 16도 안팎으로 유지된다.

옛 대통령 별장인 청주 청남대에도 1000여 명이 찾아 대청호 주변을 둘러보며 휴일을 보냈다.

이날 오후 법주사와 화양구곡, 쌍곡계곡 등을 품은 속리산국립공원에는 7600여 명, 설악산국립공원에는 6502명이 찾는 등 전국 주요 산과 계곡에도 막바지 피서객이 몰렸다. 시민들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거나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한낮의 열기를 식혔다.

전북에서는 물가 대신 도서관에서 '북캉스'를 즐기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오전 전주시 덕진구 아중호수도서관에는 이른 시간부터 더위를 피해 찾아온 시민들이 몰려 호수가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를 채웠다. 시민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LP 청음 공간을 이용하며 더위를 식혔다.

밤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한낮 폭염을 피하는 피서지가 됐다.

3살 아이와 세종에서 전주를 찾은 김 모 씨(34)는 "온도가 너무 높으니 아이가 잠을 못 자 밤마다 온 가족이 고생한다. 에어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며 "차분하게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다가 도서관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도서관 밖은 여전히 한여름이었다. 오후 1시 기준 부안의 낮 최고기온은 35.3도까지 올랐고 전주 34.9도, 군산 34.2도, 정읍 34.1도, 익산·고창 34도, 김제 33.8도, 남원 33.5도 등을 기록했다.

절기상 처서인 23일 경북 포항시 북구 영일대해수욕장 백사장 곳곳이 텅 비어 있다. 포항시는 오늘(23일)까지 관내 지정 해수욕장을 운영한 후 폐장한다. 2026.8.23 ⓒ 뉴스1 최창호 기자

같은 폭염 속에서도 포항 해수욕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이날까지 운영한 뒤 폐장하는 포항 영일대와 송도 등 지정 해수욕장에는 폐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막바지 피서를 즐기는 시민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백사장 곳곳은 성수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교적 한산했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튜브와 파라솔을 빌려주는 한 상인은 "지난해보다 해수욕장을 찾아오는 피서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장사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텅 빈 백사장을 보고 있으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더위가 심해질수록 바다와 계곡으로 사람이 몰릴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한낮 야외활동 자체를 피하려는 경향도 나타나면서 피서 풍경이 달라진 것이다.

해수욕장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지만 시민들의 발길은 계곡과 동굴, 냉방시설을 갖춘 도서관 등으로 향했다. 달력은 여름의 끝을 가리키기 시작했지만 체감하는 계절은 여전히 한여름에 머물렀다.

(취재 = 장동열·오미란·장수인·최창호·김종엽·소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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