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치깡패' 이정재 추앙한 MZ조폭…'동대문파' 40명 검거

집단폭행 영상 한 편서 시작된 수사·2만 5000쪽 기록
지역 중·고교 '짱'들 가입…"폭행·보복, 밤낮없이 잔혹"

2024년 동대문파 조직원들의 단합대회 사진 (서울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깡패'로 이름을 날리다 1961년 사형당한 이정재를 '회장님'으로 떠받든 20·30대 'MZ 조폭'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이들은 자신들을 '동대문사단'의 후예로 내세우며 가슴에 조직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고 선배에게 일본 야쿠자식 90도 인사를 했다. 말끝마다 "말씀입니다"를 붙이고 선배의 허락 없이는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등 구시대적 위계질서를 따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2계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단체 등의 구성·활동 혐의 등으로 동대문파 조직원 21명과 연합 관계인 3개 폭력조직의 조직원 19명 등 총 40명을 검거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가운데 동대문파 행동대장 A 씨 등 14명은 구속됐다. 검거된 조직원들은 모두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본 적도 없는 이정재를 '회장님'으로…"근본 있는 조직"이라며 조직원 모집

경찰에 따르면 A 씨 등은 2017년부터 올해 2월까지 지역 중·고교에서 이른바 '짱'으로 불린 후배들에게 동대문파 가입을 권유했다. 이들의 권유를 받은 후배 16명이 실제 조직에 가입했다.

이들은 후배들에게 "우리는 해방 후 이정재 회장부터 내려오는 근본 있는 조직이다. 문신을 하고 다닐 거면 정식으로 생활을 해라"고 말했다. 가입한 조직원들은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위계질서와 '처세'를 배웠다.

이들이 정신적 지주로 내세운 이정재는 해방 이후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세력을 키운 조폭 두목이다. 이승만 정권 시절 자유당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폭력을 행사해 대표적인 '정치깡패'로 불렸다. 5·16 군사정변 이후 사형을 선고받아 1961년 처형됐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이정재 추모제까지 열었다. 초대장에는 "우리는 이정재 회장을 뵌 적은 없으나 같은 길을 걷던 대선배님"이라며 "조직폭력배가 어떻게 멋지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어떻게 몰락하셨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셨다"고 적었다.

이들의 행동강령에는 '동대문사단 이정재의 정신을 계승한다', '몸에 조직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다', '조직 선배의 명령은 반드시 이행한다', '조직 이탈자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후배들은 선배를 '형님'으로 부르고 자신을 '동생'이라고 지칭해야 했다. 말끝마다 "말씀입니다"를 붙이고 양 무릎에 손을 짚어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일본 야쿠자식 인사도 했다.

조직원이 구속되면 당번을 정해 접견하고 영치금과 형사 합의금, 변호사비를 지원했다. 해외 체류나 수배, 재판 중에도 조직원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참석하도록 했다. 조직원들은 가슴 한가운데 조직 이름인 '동대문'을 한자로 문신하는 것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동대문파의 이정재의 제65주기 추모제 행사 알림. (서울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진성파' 검거되자 합숙소 없애고 활동…흩어진 조직원 엮어 '폭력단체' 입증

경찰 수사는 지난해 2월 동대문파 조직원들이 다른 조직원을 집단 폭행하는 한 영상에서 시작됐다. 경찰은 영상 속 인물들을 특정한 뒤 조직원들의 인적 사항과 활동 지역, 연락 관계를 장기간 추적했다.

폭력범죄단체 혐의를 적용하려면 개별 폭행을 넘어 조직의 위계질서와 행동강령, 역할 분담, 연락체계, 조직적 범행 등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 사건 수사 기록만 95권, 약 2만 5000쪽에 달했다.

동대문파는 지난해 서울 서남권 폭력조직 '진성파' 조직원들이 경찰에 대거 검거되자 합숙소를 폐쇄하고 조직원들을 흩어져 살게 했다. 그러나 경찰은 통신 내역과 폐쇄회로(CC)TV 영상, 조직 행사 사진 등을 확보해 이들이 합숙소 폐쇄 이후에도 하나의 조직으로 활동해온 사실을 확인했다.

동대문파 조직원들은 과거에도 노점상 갈취와 재건축 이권 개입, 다른 조직과의 패싸움 등으로 처벌받았지만 조직 자체가 폭력범죄단체로 규정된 적은 없었다.

이번 수사를 맡은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2계는 앞서 진성파 조직원 39명을 검거할 때도 위계와 행동강령, 조직자금, 연락체계 등을 추적해 조직의 실체를 규명했다.

경찰은 일부 조직원의 과거 보이스피싱 가담 전력과 다른 조직원들의 투자리딩방 운영 정황도 확인해 추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배은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2계장. ⓒ 뉴스1 이재명 기자

배은철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2계장은 "개별 폭행이나 갈취 사건을 하나로 연결해 지속적인 위계와 단체성을 갖춘 조직의 전모를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폭력범죄단체로 인정되면 가입하거나 활동한 사실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고, 조직원이 저지른 범죄도 가중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층이 조직폭력배가 되면 외제차를 타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합숙소에서 폭행당하고 밤낮없이 비상소집에 응해야 한다"며 "탈퇴하려 해도 보복당할 수 있는 만큼 조폭 생활에는 낭만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