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화환 휩쓸고 간 배재고에 정쟁의 상처…"혐오·조롱 도배"

배재고, 오늘 광주일고 찾아 사과…교문 앞 화환은 모두 수거돼
이진숙 의원 등 정치권 공세 잇달아…화환 배송취소 후기도

6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교문 앞 전경. 줄지어 있던 응원 화환과 근조 화환이 모두 철거됐다.2026.07.06.ⓒ 뉴스1 신은빈 기자

(서울=뉴스1) 신은빈 기자

엊그제까지만 해도 화환이 줄지어 있었어요.언제 또 학교 앞이 어지러워질지 모르겠네요.

6일 오전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교문 옆 화단에는 빗물에 젖은 강동구청의 불법 적치물 정비 안내문이 설치돼 있었다. '도로법 제74조에 의거 적치물을 수거하고 물품을 보관함을 알려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이곳에 줄지어 있던 화환을 치웠다는 의미이지만, 이 학교 야구부에서 발생한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논란이 진영 간 세 대결로 비화한 배재고 앞은 '언제 어지러워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지역 주민 이 모 씨(여·76)는 빗물로 얼룩진 교문 앞 비석을 가리키며 "최근 이곳에 근조화환과 응원 화환이 쌓이다시피 있었다"며 "학생들이 잘못한 것과 별개로 정치 문구가 적힌 화환이 놓이니 학교 앞이 혐오와 조롱으로 도배되고 있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대구에서 올라온 윤 모 씨(남·40대)는 목에 피켓을 앞뒤로 걸고 정문 앞에 서서 1인 시위를 열었다. 윤 씨의 손에 떨어진 빗방울이 피켓에 적힌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얘들아 미안하다' 등 문구를 타고 흘렀다.

윤 씨는 "학생들이 5·18 정신을 희화화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며칠 전처럼 화환을 가득 쌓아놓고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사태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정치 싸움으로 변질된 것 같다. 응원 화환이든 근조 화환이든 학생들을 상대로 정치적 메시지를 남발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6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에서 한 남성이 1인 시위를 열고 있다.2026.07.06.ⓒ 뉴스1 신은빈 기자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의 응원 구호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동안 교문 앞은 '화환전(戰)'의 장이 돼 왔다. 학교와 선수들을 비판하는 근조 화환이 놓였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에 질세라 응원 화환이 줄지어 배송되는 일이 반복됐다.

문제는 화환전이 진영 대결로 변했다는 점이다. 양쪽에서 보내는 화환 모두 점점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문구를 담기 시작했고 '이재명 재판', '부정선거' 등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치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이 의원은 5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정권은 생각에도 '수갑'을 채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스타벅스가 5·18과 무슨 관계냐?', '배재고 학생들과 함께합니다' 등 문구가 적힌 화환 사진을 올렸다.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2일 "5·18이 성역이 됐다"며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에 대한 중징계를 비판하면서 여야 공방이 일었다. 앞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배재고에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교문 앞에 세워진 화환들은 강동구청이 불시에 수거해 가고 있다. 도로의 통행이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 2일까지만 해도 배재고 앞은 담장 한 줄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화환이 줄지어 있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배재고등학교 앞에 응원 화환을 보냈다고 5일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이진숙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그러나 이날 오후 1시 가까이 되도록 학교 앞에 도착한 화환은 없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5일 배재고에 보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응원 화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따로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도 구청 직원들이 화환 설치 현장을 목격하면 즉시 철거한다"며 "마지막으로 화환을 철거한 날은 4일이었다"고 말했다.

배재고 사태가 정쟁으로 확산하자 일부 화환 업체가 주문을 취소하고 있다는 후기도 등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재고에 화환 배송을 주문했다가 거절당했다며, 배송 가능한 업체를 찾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물 작성자가 받은 메시지에서 해당 업체는 "배재고 쪽으로 주문 주신 건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사항이라 배송 진행이 어렵다"고 안내했다.

앞서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광주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치면서 논란을 샀다.

그 후속 조치로 배재고 야구부 전원은 6일 오후 3시 광주제일고(광주일고)를 찾아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이에 따라 사태가 수습 국면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맞불 화환' 같은 양비론적 접근과 정치권의 가세로 배재고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배재고 교문 앞을 지키던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시험 기간에 돌입했는데도 최근까지 화환이 놓이고 말이 많이 나와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be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