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개표소 '봉쇄의 밤'이 남긴 청구서…결제는 누가하나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된 개표소 봉쇄 시위 5일 차에 만난 한 스물셋 청년에게 언제까지 이곳을 지킬 생각인지 물었다. 이미 사흘 밤낮을 돗자리 위에서 보낸 그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끝까지 갈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는 "투표하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게 좋다"며 선거와 투표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상식선의 주장을 펼쳤다. '부정선거'라고 못 박기보다는 "부실함을 강요하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부정이다"라고 했다.
봉쇄 시위 11일 차인 15일. 청년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2030 청년들이 자리 잡고 있던 출구 앞 모기망을 친 텐트들도 상당수 비어 있었다. 그렇게 집회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일부 청년들은 온라인 공론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늘어난 것은 현장 자원봉사자 구인글과 음모론, '윤어게인'을 외치는 계엄 옹호론이다. 개표소 인근에는 '윤석열이 옳았다', '계엄은 옳았다 계엄군→선관위', '그러니까 니들은 빨갱이다' 등이 적힌 메모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선관위의 부실함을 미리 알아본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군을 투입해 선관위 서버를 확보하기 위해 계엄을 했으니 옳았다는 식의 논리다.
구호의 변화는 시위 성격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반 "재선거"에서 "부정선거 재선거",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를 거쳐 "부정선거 A-WEB 한미 공조 국제수사"로 바뀌었다. 시위 초기 '재선거'라는 목적은 희석되고 음모론에 기울고 있는 모양새다.
봉쇄 시위가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외딴섬이 될지 우려된다. "여러분은 이곳을 지켜달라"며 힘을 보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당부도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장 대표와 김민수 최고위원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봉쇄 시위에 불을 붙였지만 그사이 발생한 각종 범법 행위에 대해선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지난 2주간 개표소 인근에서는 △불법 촬영 △주니어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신원 확인 강요 △스포츠 단체에 대한 업무방해 △언론사 기자 폭행 △경찰 모욕 등이 발생했으나 이에 대한 자성 촉구는 없었다.
이제 공식출범한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 봉쇄 시위가 계속된다면 업무방해로 인한 피해는 수십억 원대까지 불어날 수 있다.
이미 대한체육회가 추산한 피해 금액만 60억 원이다. 여기에 충분히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경기에 출전해야만 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불안과 심리적 부담은 돈으로도 환산할 수도 없다.
"자리를 지켜달라"던 정치권이 이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이 피해 청구서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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