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좋아? 싸가지 없네"…3살 딸은 아빠를 따돌려야 했다
[왕따부모] ①가스라이팅으로 시작된 '부모따돌림'
학대 의심돼도 면접교섭 못했다…"아이 안아주고 싶어"
- 신윤하 기자, 유채연 기자,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유채연 강서연 기자
"나연이(가명·당시 3세)가 아빠 보러 가는데 안 우니까 서운해. 싸가지 없는 게."
전 아내와 이혼소송을 시작한 지 9개월 차에 접어들었던 2017년 6월. 김상철(가명·당시 41세) 씨는 아내와 세 살배기 딸 나연이, 장모가 사는 아파트 복도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아빠와의 면접교섭을 앞두고 신이 난 나연이에게 장모는 "싸가지 없다"며 눈치를 주고 있었다. 나연이가 아빠를 보고도 울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날뿐만이 아니었다. 상철 씨와의 면접교섭 날이면 나연이네 집 앞 복도는 '아빠 차를 안 타겠다고 해라', '아빠 보면 울어야 한다'는 처가 식구들의 압박으로 시끌벅적했다.
세 살배기 아이에게 가혹한 말들이 쏟아졌다.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아빠 집에 갈 거야? 엄마, 나연이 보고 싶어서 울었어" 엄마는 아이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또 때로는 지시를 따른 아이를 칭찬하기도 했다. "오늘은 나연이가 이쁜 짓 많이 했네? 아빠보고 '집에 가'하고." 나연이가 아빠랑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온 날엔 언성을 높일 때도 있었다. "나연이가 약속 안 지켜서 화났어."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명백한 '부모따돌림'이었다. 한쪽 부모가 자녀를 조종해 다른 부모를 따돌리게 하며, 접촉을 거부하게끔 하는 현상을 부모따돌림이라고 일컫는다.
특히 부모따돌림은 상철 씨 같은 이혼가정에서 비양육 부모를 따돌리는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자녀는 자신을 키워주는 양육 부모에게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비양육 부모를 끝내 거부하게 된다.
처음엔 어른들 압박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생글생글 웃던 3살 나연이 얼굴에도 그늘이 드리웠다. 면접교섭 날이 되면 아이는 자기 때문에 속상해 울었다는 엄마에게 연신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러곤 집에서 나와 상철 씨를 만나면 이유도 없이 울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2017년 어느 날 나연이는 집 밖으로 쫓겨났다. 나연이와 상철 씨의 면접교섭 당일, 나연이가 놀이터에서 잘 놀았던 날이었다.
"나연이 옷 다 가져가. 나연이 엄마랑 안 살 거니까.""엄마…아니야. 아니야.""네가 아빠한테 가서 엄마 우는 거야. 아빠한테 가."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아버지를 좋아한단 이유로 딸의 세상이 지옥이 된다는 걸, 상철 씨는 그때 깨달았다. '남겨진 세 살배기 아이는 어머니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아버지를 미워하는 척해야 하는구나.' 면접교섭이 끝나면 상철 씨는 떠나고 나연이는 엄마, 이모, 할머니와 집에 남아야 했다. 남겨진 아이의 고통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상철 씨는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나연이는 상철 씨가 이미 한 번 품에서 뺏겨 본 적 있는 아이였다. 별문제 없이 결혼 생활 중이던 아내는 갑자기 1살이던 나연이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가 이중국적을 둔 A 국가였다. 아내는 나연이를 한국으로 돌려보내 주지 않았고 상철 씨는 '헤이그 국제아동탈취 협약'에 따른 아동 반환을 청구했다.
결국 나연이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상철 씨 품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아내가 한국 입국과 동시에 아이를 데리고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이후 상철 씨는 나연이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게 10년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매주 위태로운 면접교섭이 이어졌다. 상철 씨에겐 이거라도 붙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연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의 작은 몸에 상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학대를 의심한 상철 씨가 나연이의 의료기록을 떼보니 짧은 기간 동안 팔이 빠져 여러 번 정형외과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나연이는 자는 동안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다. "엄마, 할머니, 아파요. 아야 아야"
상철 씨는 나연이를 데리고 B대학교병원에서 심리검사를 진행했다. 담당 의사는 심리평가 보고서에서 "어머니나 외할머니에 대해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만나고 싶거나 통화하고 싶은지를 묻자 겁에 질리며 싫다고 했다"며 "학대 사실에 대해 일관되게 보고했다"고 적었다.
상철 씨는 그동안 수집한 녹취록과 의료기록 등을 제출하며 전 아내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오히려 부모따돌림 및 학대 정황을 목격한 뒤로는 상철 씨가 나연이를 만나기 더 힘들어졌다. 나연이 친모가 면접교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상철 씨의 면접교섭권을 보장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2019년 12월 나오자마자, 나연이 친모는 기다렸다는 듯 2주 후 법원에 '면접교섭 배제 심판 청구'를 했다. 상철 씨는 "학대가 드러날까 봐 만남을 차단한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상철 씨는 나연이 친모가 아이를 보여주지 않아 3년간 나연이를 만날 수 없었다. "나연이가 아빠를 안 만나고 싶어한다" 등의 이유였다. 그사이 나연이 친모는 상철 씨에게 언질 없이 이사를 갔다. 상철 씨는 나연이가 무슨 초등학교에 다니는지도 알 수 없었다.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매달 양육비를 보내고, 친권이 있어도 갑자기 사라진 내 아이의 학교조차 알 길이 없었다.
상철 씨가 나연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3년 후인 2022년, 나연이가 8살이 되던 해였다. 2019년 9월 법원에 신청했던 면접교섭 이행명령 결과가 나오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사랑하는 딸을 다시 만났을 땐 나연이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넨 상철 씨를 뒤에 두고, 나연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돌아섰다. 면접교섭은 늘 나연이 친모가 배석한 채 이뤄졌다.
재판부가 봤을 때 면접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복리'다. 아이가 면접교섭을 끝내고 싶어 하면, 부모는 면접교섭을 강요할 수 없다. 돌아서는 나연이에게 상철 씨가 "잘 지내야 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상철 씨는 그 이후로 5년째 매주 '3초 면접'을 하고 있다. 아이를 만나기로 한 면접교섭 날이 되면 아이 집 근처로 향한다. 아이가 "아빠 보기 싫다"고 하면 바로 면접교섭이 끝날 것을 알지만, 나연이의 얼굴을 몇 초라도 더 보고 싶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먼 길을 간다.
"가장 바라는 바요? 저는 그냥 마음 편하게 옛날처럼 나연이랑 이야기하고 안아주고 싶어요. 근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아이가 상처받을 거니까. 부모는 아이 표정만 봐도 알잖아요."
sinjenny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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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혼했다고 자녀와 천륜이 끊기는 건 아닌데, 어느날 '왕따'가 된 부모들이 있다. "너 아빠랑 놀면 엄마 죽어" "엄마가 너 버린 거야" 양육부모의 갖가지 가스라이팅 속에 아이들은 비양육부모에게서 등을 돌린다. 원인도 모르는 '부모 따돌림' 속에 혼자가 된 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지만 만날 수가 없다. '엄마·아빠를 보기 싫다'는 아이의 말은 진심일까? 아이도, 부모도 불행한 세상의 이야기. 뉴스1이 한국의 부모따돌림 실태와 원인, 개선 방안을 심층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