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 피해를 작품으로…"문서 속에서 나와 행동하는 존재로"
서예희 작가 인터뷰…"금기를 그리는 기분"
- 유채연 기자
(서울=뉴스1) 유채연 기자
"아동 성폭력 피해자가 힘없는 약자만이 아니라 혼자 자아를 가지고 행동력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는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서예희 작가(21·여)의 두 번째 개인 전시회인 '서예희전; 헐거운 의지' 전이 열렸다.
그가 가명 아닌 실명으로 세상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모부에 의한 친족간 성폭력 피해를 포함한 두 건의 아동 성폭력 피해로 재판을 치르는 동안 서 작가는 가명으로 언론과 재판관 앞에 서왔다.
서 작가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문서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 이름으로 존재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 작가는 성폭력 피해 경험과 자신의 감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왔다. 가해자가 진술을 번복해 피시방에서 사실 확인서를 작성하던 기억, 친척으로부터 '이모부가 감옥 가서 네가 좋을 게 뭐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의 감정, 소셜미디어(SNS)에서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을 때 받았던 악플과 2차 가해 등이 소재가 됐다. 지난해 9월엔 '억눌림'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는 피해의 기억보다 '나의 행동'에 방점을 두고자 했다. 서 작가는 "사람들은 피해자는 행동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수동적이라고 생각한다든가 피해가 일어났으면 밖에 나가거나 웃고 떠들거나, 하물며 친밀관계에 있는 가해자랑 대화하는 것조차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피해에 치중하기보단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녹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 작가는 '과거 경험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부담이 되진 않냐'는 질문에 "부담은 솔직히 많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가정 폭력을 경험했으며 총 세 건의 아동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 가족 중 한 명은 그가 '어두운 그림'만 그리는 것을 창피하다고 여기며 되레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탈선을 하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며 "그때의 기억을 그리는 것 자체가 (그리면) 안되는 것, 금기시되는 것을 그리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받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경험은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서 작가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방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저를 이해해 주는 느낌이었다"며 "너무 귀중해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를 온 분이 '이렇게 감명 깊은 작품은 처음이다'라고 말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모르는 분들이 전시를 와서 '그린 사람이 나이가 많이 어린데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할 때는 싱숭생숭하기도 했다"며 "저만의 아픈 기억이 작품으로서 좋은 영향을 주고 인정받는다는 마음에 행복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80여 점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은 '2184일'도 벽에 걸렸다. 성폭력 이후 약물 자살을 시도했던 과거의 자신이 그로부터 2184일이 지나 전시를 진행하는 현재의 자신을 안아주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날 전시회장 한편에는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전시장을 방문하며 건넸던 꽃다발들이 놓여 있었다. 서 작가는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의 재판을 모니터링하거나 성폭력 관련 탄원서를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그가 피해 탄원서를 작성했던 피해자 중 한 명은 방명록에 장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전시가 또 다른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줬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서 작가는 "다른 피해자들도 자신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한다. 분명히 지금은 힘들더라도 나중에는 정말 여러 빛깔의 빛이 나 자신을 맞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작가는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의제 강간에 해당하는 나이가 2020년 5월 개정돼 지금은 만 16세 미만으로 규정돼 있다"며 "그 나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화간으로 귀결되거나 애들을 성적으로 본 어른들이 '꽃뱀질'을 당한 사람으로 위로받는 기괴한 상황이 우리나라에 지금도 만연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피해자 연령 기준을 13세에서 16세로 높인 것은 불과 6년 전의 일이다.
이전엔 13세 지적장애인인 성폭력 피해자가 다수의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재판부가 아동성폭력이 아닌 아동성매수로 처벌하는 등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가 만 7세 수준의 지적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자발적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 작가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저도 '요즘 애들은 애들 같지가 않다', '계획적이고 발랑 까졌다', '남자를 가지고 논다'는 악플을 받아봤다"며 "아동이 어리석어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아동의 취약성을 이용한 가해자들의 악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시점을 바꿔서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서 작가는 오는 6월 단체전에 그림을 출품할 예정이다. 그는 "저는 앞으로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고 다채로운 미래를 그려가고 싶다. 저를 포기할 생각하지 않고 서예희로서 정말 활기차게 살아가고 싶다"며 웃었다.
kit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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