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서 부활한 탑골 장기판…"공원보다 낫네" 어르신 술판 대신 웃음꽃

낙원상가에 마련된 '어르신 놀이터'…음주·싸움 없이 왁자지껄
서울 시민 아니어도 이용 가능…"소문 듣고 전국서 찾아와"

10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1층에 위치한 탑골 어르신 문화 놀이터의 모습. 2026.2.10/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유채연 기자 = "구청에서 이렇게 배려해주니까 어르신들은 밖에 나오고 좋지. 최고 만족이야."

10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1층에 소재한 '탑골 어르신 문화 놀이터' 안에서 만난 60대 A 씨는 오전부터 주거지인 사당에서 이곳으로 달려왔다. 자신을 '신출내기'라고 소개한 A 씨는 "여기처럼 장기 두기 좋은 데가 없다"고 너스레웃음을 지었다.

종로구청이 지난해 7월 31일 탑골공원에서 장기판 이용을 금지한 이후 6개월 만인 2월 2일 낙원상가 1층에 탑골 어르신 문화 놀이터를 열었다. 20여 평의 놀이터 안엔 17개의 테이블과 장기판이 놓였다. 총 34명이 앉을 수 있고, 정수기와 공기 청정기 등도 구비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낮 12시 20분쯤 되자 놀이터는 거의 만석이 됐다. 평소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거의 만석이라는 게 놀이터 직원의 설명이다.

대국을 벌이는 노인들뿐만 아니라 테이블 옆에 서서 훈수를 두는 이들도 7~8명에 달했다. 각 장기판에서 승패가 날 때마다 노인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오고 경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탑골공원 북문을 메웠던 장기판들과 이곳이 다른 점은 술을 먹는 이들이 없단 점이다. 구청이 금지하기 전까지 탑골공원 인근은 약주 한잔을 걸치며 장기를 두는 노인 인파로 사시사철 붐볐다.

강동구 천호동에서 온 박 모 씨(87·남)는 "탑골공원 때는 술 마시고 싸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 실내에서 장기 두게 하니까 낫다"며 웃었다.

60대 B 씨도 "여긴 술을 팔지도 않고 먹을 곳도 없지 않냐"며 "탑골공원 때는 술 먹고 파출소에서 생떼 부리는 노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놀이터 내부에선 음주할 수 없으니 노인들 간에 괜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건강한 대국만 펼쳐졌다. 간간이 노인들 사이에 가벼운 욕설이 오가긴 했으나, 장기를 두면서 으레 발생하는 실랑이 정도였다. 노인들은 이미 아는 사람과 인사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이들과 자리를 섞어가며 대국을 벌이기도 했다.

놀이터 직원은 "여기선 커피, 음주, 담배가 금지돼 있는데 아직까지 홍보물을 외벽에 부착하지 않아도 사용자분들이 알아서 지켜주고 계신다"며 "이곳에 자주 오시는 분들이 자체적으로 선도를 해주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1층에 위치한 탑골 어르신 문화 놀이터의 모습. 2026.2.10/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음주·담배·커피를 제외하곤 이곳 놀이터에서의 다른 제한은 없다. 꼭 종로구 주민이어야 한다든가, 서울 시민이어야 한다든가, 미리 이용 등록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복잡한 절차가 없단 뜻이다. 서울 시민이 아닌 이들도 이곳에서 장기를 둘 수 있어 서울 인근 경기·인천에서 온 노인들도 있었다.

김재권 씨(76·남)는 경기 광명시에서 40분 정도 대중교통을 타고 이날 정오쯤 놀이터에 도착했다. 김 씨는 "여기도 이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서 사람이 많이 올 것 같다. 대구랑 대전에서도 놀러 오더라"며 "탑골공원이 옛날부터 역사가 깊지 않냐"고 말했다.

김 씨는 탑골공원보다도 놀이터가 장기 두기에 좋다며 환영했다. 김 씨는 "탑골공원은 여름엔 엄청 덥고, 노숙자들도 많아서 술 먹고 추태 부리는 사람들도 많았다"며 "근데 여긴 에어컨도 나오고, 방음도 되는 데다가 유리창이 있어서 따뜻하기도 하다"고 웃었다.

경기 김포시에서 온 박 모 씨(77·남)도 "복지 센터는 종로 주민만 들어가고 출입이 제한되는데, 여긴 개방돼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다"며 "특정 지역을 정해 놓고 그곳의 주민만 이용하라고 하면 여러 사람을 위하는 공간은 아니지 않냐. 여긴 그런 게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 대부분이 이전에 탑골공원에서 장기를 두던 노인들이었다. 노인들은 언론 보도를 보고 놀이터가 생겼다는 점을 알게 돼 이곳을 찾기도 하고, 구청이 붙인 현수막을 보고 왔다고도 했다.

서울의 또 다른 '장기 성지'인 동작구 보라매공원이나 종로구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이용하던 노인들도 탑골공원 인근에 실내 공간이 생겼단 소식을 듣고 한 번쯤 와보는 분위기였다.

이전에 탑골공원 북문에서 장기를 뒀다는 이 모 씨(83·남)는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여기 놀이터보다 크기가 3배쯤은 되는데, 여기도 좀 더 공간이 넓어지고 환기가 잘됐으면 좋겠단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탑골공원은 대한민국 독립 정신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종로구는 앞으로 특정 세대만이 아니라 전 세대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10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1층에 위치한 탑골 어르신 문화 놀이터의 모습. 2026.2.10/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