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소중한 광고?…서울지하철 광고판, 비상문보다 2배 많아

민간채납 광고물 '최다' 건대입구역 가보니…비상문 15개뿐
민간 기부채납 계약에 발 묶여…"협약서 근거 부족해 조정 한계"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지하철 7호선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부착된 '비상문' 표시. 2025.12.28/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서울=뉴스1) 유채연 기자

"건대입구에서 지하철을 자주 타는데, 평소 비상문을 봤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지하철을 기다릴 때 보면 광고판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건대입구역 2호선을 자주 이용한다는 강 모 씨(25·여)는 "2호선 구의역에도 광고가 많은데, 사고가 나서 그런가 건대입구역보다는 덜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3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지하철 11개 주요 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광고물이 과도해 비상 상황 시 이용할 수 있는 탈출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8일 기자가 찾은 건대입구역 2호선 승강장에는 내선과 외선에 각 34기씩, 총 68기의 광고물이 설치돼 있었다. 각 광고물은 가로 약 1.5m, 높이 1m에 7㎝ 두께로 이뤄졌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열차 방향에서 '패닉바'를 밀어 스크린도어를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설계된 비상문이 있다. 반면 고정 광고물이 비치된 스크린도어 쪽은 비상문을 열차 쪽에서 열기 어려워 유사시 탈출이 불가능하다.

이런 고정된 광고물이 승강장마다 수십 개 설치돼 있다 보니 정작 시민 안전을 위한 비상문은 부족한 상황이다.

10-4번 플랫폼까지 있는 건대입구역 구의역 방향 승강장에는 스크린도어에 붙은 광고물이 총 34개, 비상문은 총 15개로, 광고판이 2배 많았다. 광고물에 가려지지 않은 비상구는 한 개 열차 칸에 1개 꼴이었다.

약 1m 너비 비상문에는 한 번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용하는 스크린도어 출입문의 너비는 비상문의 약 1.7배 너비로 총 40개인 점을 고려하면 비상 상황 발생 시 승객이 이용할 수 있는 비상문의 총 너비는 평상시의 약 22%에 불과한 셈이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사고가 발생하면 320명(열차 한 칸 혼잡도 200% 기준) 이상의 승객이 1m 너비 비상구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비상문 45개가 있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스크린도어 출입문(64개)의 70% 수준이 확보된 건대입구역 7호선 승강장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방향 승강장에 시민들이 내리고 있는 가운데 열린 스크린도어 옆으로 비상문이 보인다. 2025.12.28/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문제는 건대입구역 2호선 승강장의 광고물이 민간 기부채납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민간 기부채납 광고물이란 민간사업자가 도로, 철도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준공과 동시에 소유권을 정부·지자체에 넘긴 뒤 일정 기간 직접 운영하며 이용료로 수익을 회수하는 BTO 방식으로 설치된 광고물을 말한다.

건대입구역 등 20여 곳의 승강장은 이러한 BTO 방식으로 민간사업자가 스크린도어와 광고를 설치해 광고 수입으로 수익을 충당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서울시의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1~4호선 11개 역의 광고시설물은 건대입구역이 68기로 가장 많다. 이어 △서울역 △시청역 △종로 3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잠실역 △역삼역 △홍대입구역 △교대역 △양재역 △명동역에도 각각 민간 기부채납 광고물이 38기씩 설치돼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직접 설치한 광고물은 47개 역에 399기인데 반해 민간 기부채납 광고물은 11개 역에 448기가 설치됐다.

평균으로 따져보면 민간 기부채납 광고물은 역당 40.7기꼴로 교통공사가 직접 설치한 광고물 수(역당 평균 8.5기)의 4.8배 수준이다. 11개 역에 게재된 광고가 다른 역에 비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길을 서두르는 모습. 2025.12.1/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이에 과도한 광고물이 승객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서울 지하철역 일대에선 광고물을 줄이는 작업이 진행돼 왔다.

앞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당시에는 김 군이 작업하던 철도 방면에서 스크린도어를 열 수 없었다는 문제가 확인됐다. 스크린도어 고정문을 상시 개폐가 가능한 비상문으로 교체하고, 전체 역사를 대상으로 고정광고물 철거 등이 추진됐다. 감사원도 관련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민간사업자와의 계약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광고물 교체가 지연되면서 '비상문 부족'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관련해 지난 11월 11일 진행된 서울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시민 안전을 위해 (광고물) 계약 조정·물량 축소가 필요하다"는 질의가 제기됐다.

행정사무 감사 당시 서울교통공사는 "계약 기간이 있기 때문에 (민간사업자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광고물에 대한 조치가) 쉽지는 않았다"면서 "BTO 방식으로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 보니, 협약서상에서 명확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근거가 들어 있다면 강하게 (조정)할 수 있는데 초창기에 (조정 관련) 협약이 안 돼 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광고물이 있는 곳의 경우에는 일부 철거 등 계약 조정이 필요하다'는 곽향기 교통위원회 위원 지적에는 "일차적으로 협약서를 면밀히 검토해 조정 조항이 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협상을 시도하겠다"며 "조항이 없어 불편이 처리 안 된 부분에 대해서는 민간사업자와 다시 대화해 보겠다"고 밝혔다.

kit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