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 판례' 복병 만난 리박스쿨 의혹 [박응진의 참견]
- 박응진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에 '자승단' 참여자가 댓글을 올린다. 이 댓글은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으로, 다른 참여자들이 공감수를 높여 상단에 노출시키는 방식의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은 대선을 앞두고 자승단 등 댓글 조작팀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측은 공직선거법상 유사기관 설치 금지 위반 등 혐의로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를 고발했고, 경찰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틀 뒤 리박스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이 과정에서 리박스쿨 측이 댓글 작업에 참여한 사람에게 '창의체험활동지도사' 자격증을 발급해 늘봄교육 교사로 일하게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댓글은 공론장이며 국민의 권리"라던 손 대표는 결국 "리박스쿨 관련 활동은 영구히 접을 것"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손 대표에게 공직선거법상 부정선거운동, 매수 및 이해유도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박정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통해 영장을 기각했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사유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손 대표를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영장실질심사였지만, 자승단이 '공직선거법상 사조직'에 해당하는 지도 쟁점이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제87조 2항은 '누구든지 선거에서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의 선거운동을 위하여 그 명칭이나 표방하는 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사조직 기타 단체를 설립하거나 설치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 등 민주당 인사에 대한 허위·비방 댓글을 작성하고 공감수를 높여 상단 노출을 하는 방식으로 '여론 공작'을 폈다는 의혹을 받는 자승단이 공직선거법상 사조직에 해당한다고 보고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영장실질심사 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 측에 '자승단을 사조직으로 볼 수 있느냐', '자승단의 조직성, 단체성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채팅방이나 온라인상에서 모임을 결성했다고 해서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사조직으로 볼 수 있느냐' 등 취지의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11년 조직돼 당시 801명의 회원을 갖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선거활동 목적 인터넷 카페 개설과 인터넷상 활동은 정보통신망을 통한 선거운동의 하나로서 허용돼야 하며, 이를 두고 선거법상 사조직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2013년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노사모 카페 개설을 위해 "별도로 준비 모임을 갖거나 카페 개설 후 일부 회원들이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개최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모임이 인터넷 카페 개설 및 그 활동을 전제로 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성격을 갖는 것에 그친다면 역시 공직선거법상 사조직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이를 넘어서서 인터넷상의 카페 활동과 구별되는 별도의 조직적인 활동으로서 공직선거법상 사조직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해당 인터넷 카페의 개설 경위와 시기, 구성원 및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의 활동 내용 등 제반 사정들을 종합해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이 손 대표에게 적용한 부정선거운동 혐의를 놓고 향후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 과정에서 양측의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손 대표 측은 매월 지급해 오던 장학금을 활동가 등에게 선거운동기간에도 지급했다며 매수 및 이해유도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창의체험활동지도사 자격증을 대가로 준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대선 직전 이슈가 된 리박스쿨 의혹은 대선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경찰의 수사력이 집중됐던 리박스쿨이었지만,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손 대표의 구속 불발과 노사모 판례 등의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박스쿨 의혹이 대선을 앞둔 '한철 장사'는 아니었는지 지켜볼 일이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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