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스토커 퇴치법…"첫 답장에 답이 있다"
조사결과 스토커 90% '전 애인'·'동네가게 점원' 등 지인들
연애 시·오다가다 마주치며 女가 줬던 친절 '관심'으로 착각
스토커 처벌강화 정부 발표에 "사라진 인성교육 중요하다"
-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타인의 의사에 반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포와 불안을 반복적으로 주는 행위 '스토킹'.
유명 연예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20~30대 여성의 약 30%는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들을 스토킹하는 이들은 전 '애인'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가게 점원, 아파트 경비원, 모임에서 딱 한 번 술잔을 기울인 사람 등 피해자의 지척에 있었다.
"그렇게 상냥했던 남자가 이렇게 변할 수 있나"라는 생각은 더는 신기한 일이 아닌 세상이 됐다. 스토커라는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가해자 90%는 '지인'…가게 점원에서부터 트럭 상인까지
A씨는 지난해 12월 낯선 남자에게 "아름답습니다"라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장사하는 A씨는 단골손님 중 한 명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냈지만 이어지는 그의 문자에 점점 공포를 느꼈다.
'꽃처럼 아름답다'는 문자가 '퇴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로 이어지더니 '오늘은 늦게 들어가시네요?'라는 내용으로 귀결되며,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손님들을 함부로 의심할 수도 없다"며 "하지만 누군가 나를 몰래 쳐다보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생각을 하니 간담이 서늘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B씨는 지난여름 헤어진 남자친구의 미행에 '살인 충동'까지 느꼈다.
약 3개월 만나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B씨는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너 아니면 안 된다' 등의 문자를 하루에 수십 통씩 받았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까지 삭제하고 번호를 새로 받았지만 전 남자친구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바꾸며 문자를 계속 보냈다.
급기야 한밤중 퇴근하는 B씨를 집 앞에서 기다리며 불쑥 나타나거나, 1층에 거주하는 그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B씨는 "그만하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없다"며 "만날 때는 차분하고 상냥했는데 헤어지고 나서 저런 모습을 보니 사람이 아니라 '괴물'처럼 보였다"고 토로했다.
스토킹을 당하는 일반인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씨는 전 남자친구였지만 A씨도 가족과 함께 스토커를 수소문해보니 아파트 경비원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한 50대 여성을 스토킹한 남성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과일과 채소를 팔던 상인이었다. 급하게 물건을 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았던 이 여성은 "그가 나를 스토킹할 줄은 몰랐다"며 "알고 나니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조사에 따르면 1년간 상담 건수 50건 중 90%에 해당하는 45건이 가게 고객과 동네 사람 등으로 조사됐다. 특히 전 남자친구에 의한 스토킹은 29건으로 58%에 달했다.
스토킹 지속 기간은 1개월 이상에서 6개월 미만이 32%로 가장 많았지만, 6개월 이상 지속한 경우도 28%로 나타나 피해자들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고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커들은 보통 집요한 전화나 문자 연락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혔지만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부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피해자로 사칭하거나 민감한 정보를 올려 망신을 주는 방법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기분 잠시 안 좋나 보다"…착각이 결국엔 '스토킹'으로
전문가들은 스토커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리했다. 하나는 '애정망상형'으로 스토커와 피해자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저 사람과 인연이 있다'고 착각하는 유형이다. 연예인을 스토킹 하는 스토커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두 번째는 '왜곡된 남성지향적 사고방식'을 가진 스토커이다. 이른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맹신하는 유형이다. 일반인을 스토킹 하는 스토커들은 대부분 이 유형에 속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일반인 스토킹은 왜곡된 남성지향이 만들어낸 사고방식에 갇힌 남성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쉽게 말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것을 맹신해,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인'이 '스토커'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토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처음 답장이 중요하다"고 입을 뗐다.
곽 교수에 따르면 스토커는 처음에 설레는 마음으로 이성에게 문자를 보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을 받으면 희망을 얻는다.
그는 "스토커가 별다른 사람이 아니다. 여자가 약간의 반응만 보이면 거기서 희망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줄 착각한다"며 "하지만 이것은 여자의 진심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이러한 반응이 끊기면 첫 반응을 '옛날에 나 좋아했잖아' 식으로 착각하며 스토킹에 빠져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인 중 특히 전 남자친구에 의한 스토킹이 많은 이유도 이 논리로 설명했다.
곽 교수는 "처음 사귈 때 여자가 보여준 상냥한 행동이 헤어지게 되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하지만 '여자가 괜히 저러는 거야', '잠시 기분이 안 좋나 보다'로 착각하며 시작되는 남자의 구애가 결국에는 스토킹으로 변질된다"고 말했다.
◇정부, 처벌 강화 발표…전문가 "담길 내용·인성 교육 중요"
정부는 지난달 28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스토킹 피해자를 상대로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스토커에게는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통상 8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됐던 스토커는 앞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 교수는 "2000년 초반에도 스토킹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됐다 폐기되고 말았다"며 "그 이유는 형사법으로 제재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 이후 살인이나 폭행 등의 강력범죄의 전조로 스토킹이 부각되면서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며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기는 지가 중요하다"며 "스토킹의 예방과 제지를 구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를테면 사전에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정신감정과 제재 또는 격리, 피해자 보호활동 등은 형사 법규로는 담아낼 수 없으므로 이를 명확하게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법 제정과 함께 모르는 문자에 대한 주의도 당부했다.
곽 교수는 "인간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굳이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며 "낯선 문자는 처음부터 답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물론 수많은 상황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판단해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며 "자신이 불쾌감을 느끼면 주저 없이 경찰에 신고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여성상담전문가는 "법이 강화되는 것을 환영하지만 사랑과 범죄 사이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주관적 영역에 속할 수 있고 보복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의 신고로 이어질 지도 미지수"라면서 "바른 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스토킹 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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