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부담, 미래에 전가 말라"…광화문 도로에 드러누운 시민들
전국 17개 지역서 기후정의행진…"기후 불평등 줄여야"
폭염·가뭄 피해에 '기후불안'…에너지 전환 지역피해 주장도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19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머리 위로 '폭염은 평등하지 않다', '지금 당장 기후 정의', '정의로운 삶을 위해 기후위기를 해결하자'는 손팻말이 잇따라 올라왔다. 대열 앞에는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폭염·홍수·가뭄이 일상이 된 가운데, 그 피해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적은 취약 국가와 농민·노동자·청년에게 더 크게 돌아가고 있다. 이런 불평등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민들이 이날 서울 도심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그 부담이 약자에게 쏠리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했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17개 지역에서 동시에 열린 '919 기후정의행진'에는 노동·인권·종교·청년·시민사회 등 620개 단체가 참여했다. 시민사회가 주축이 된 이 행사는 2019년 글로벌 기후파업을 계기로 국내에서 시작됐고,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2022년부터 '기후정의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가원 919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달 네팔에서 발생한 암벽·빙하 붕괴와 홍수를 언급하며 "기후위기에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장 혹독하게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불균등한 피해를 '기후 부(否)정의, 기후 불평등'으로 규정했다.
농촌에서는 기후변화가 농사 일정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충남 논산에서 토종 씨앗을 심고 생태농업을 한다는 권태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충남연합 활동가는 "몇 년간 수해로 토종 콩을 수확하지 못했고, 올해는 가뭄으로 작물들이 타들어 갔다"고 했다.
그는 "작물이 자라야 할 때 비가 쏟아지고 비가 필요할 때는 가뭄이 이어졌다"며 토종 씨앗 보전과 생태농업 확대, 농민의 생산비·소득 보장을 요구했다.
기후위기 부담이 미래세대에 집중되고 있다는 청소년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이우학교 학생 류민호 군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과정에서 초기 감축을 강화해야 한다는 청소년들의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송하율 양은 "초반에 빠르게 감축하지 않을수록 누적배출량은 커지고 그만큼 미래세대의 부담도 커진다"며 청소년도 기후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시민으로서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안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대학생기후행동 활동가 전지현 씨는 사전 오픈마이크에서 비건 학식 중단과 일회용 컵, 장애인 이동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환경부담 등을 학내 기후정의 문제로 꼽았다.
그는 개인적 실천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무력감에 행동을 포기하는 '기후불안'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전하며 "기후불안은 개인의 정신적 요소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고 교육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에너지전환 과정의 부담을 누구에게 지울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참가자들은 석탄 발전을 줄이는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전환 대책이 필요하며 재생에너지·송전망·양수발전 확대 역시 농산어촌 주민과 생태계에 일방적인 부담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최 측은 노동권과 장애인·이주민의 권리, 전쟁과 군사 부문의 탄소배출도 기후불평등과 연결된 문제로 제시됐다. 참가자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에너지·용수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 있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본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와 종각역 사거리, 조계사와 송현녹지광장을 거쳐 정부서울청사 인근까지 행진했다. 행진 중에는 참가자들이 도로 위에 일제히 몸을 눕히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도 벌였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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