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모욕에도 무뎌진 직장인들…'갑질 감수성' 3년째 하락

'일 못해 권고사직'엔 가장 관대…폭언엔 가장 민감
30개 항목 중 20개 4년째 하락…중간관리자 감수성 최저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직장인들이 폭언이나 모욕, 반말 등 명백한 직장 내 갑질에도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사적 심부름을 시키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는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도 4년 전보다 크게 약해졌다.

23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 1~9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100점 만점에 63.5점을 기록했다. 2023년 72.5점을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하락세다.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법 관련 12개, 직장문화 관련 18개 등 총 30개 항목으로 나눠 조사한 것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해당 행위를 문제라고 보는 인식이 강하다는 뜻이다.

30개 항목 가운데 20개는 2023년 이후 매년 점수가 떨어졌다. 가장 크게 후퇴한 것은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사적인 일을 부탁하는 데 대한 인식이었다.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도 부탁할 수 있다'에 대한 감수성은 2023년 84.4점에서 올해 70.1점으로 14.3점 낮아졌다.

폭언은 올해 조사에서도 73.5점으로 30개 항목 중 감수성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2023년 87.7점과 비교하면 14.2점 떨어졌다. 직장인들이 여전히 폭언을 가장 뚜렷한 갑질로 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마저 빠르게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비슷한 흐름은 다른 갑질 행위에서도 나타났다. 직원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데 대한 감수성은 4년 새 14점 떨어졌고, 상사나 선배의 반말은 13.2점, 본연의 업무가 아닌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은 13점 낮아졌다. 모욕적인 업무지시에 대한 감수성도 84.6점에서 72.4점으로 12.2점 하락했다.

기본적인 노동법에 대한 인식도 후퇴했다. '회사가 어려워도 임금은 줘야 한다'는 데 대한 감수성은 2023년 80점에서 올해 72.7점으로 7.3점 낮아졌다. 올해 전체 항목 가운데서는 폭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지만 역시 하락세를 보였다.

반대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권고사직이었다. '일을 못 하는 직원에게 권고사직은 필요하다'에 대한 감수성은 47.4점에 그쳤다. '갑자기 일을 그만둔 직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도 48.7점이었다. 두 항목은 4년 연속 전체 항목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갑질에 대한 인식은 직급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였다. 중간관리자의 감수성 지수가 59.8점으로 가장 낮았고 상위관리자는 61.6점, 일반사원은 66.2점이었다.

특히 일반사원과 중간관리자는 회식에 대한 생각에서 차이가 컸다. '팀워크 향상을 위한 회식이나 노래방 등은 조직문화를 위해 필요하다'에 대한 감수성은 일반사원이 67.4점, 중간관리자가 56.8점으로 10.6점 차이가 났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갑질을 갑질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흔들리면 직장 내 괴롭힘이나 노동법 위반이 더욱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면서 "관리자 대상 교육과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하고, 노동법상 최소 기준이 예외 없이 지켜지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과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