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라지만 '종이책' 열광하는 2030 여성…'텍스트힙' 뜬다

서울국제도서전 개장 3시간 전부터 긴 줄…사전예매 조기 매진
AI 발전에 뇌 기능 퇴화 우려…'질문하는 인간'이 뜬다

24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참관객들이 2026 서울국제도서전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2026.06.24/ⓒ 뉴스1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한민아 수습기자

"아침 7시에 퇴근하고 왔습니다.티켓은 미리 얼리버드(미리 예약하는 것)로 구매했는데 오픈런(개장 전 기다렸다가 매장시간 맞춰 바로 입장하는 것)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SIBF)이 막을 올린 24일 오전 코엑스. 개장 시각 3시간 전부터 A·B1홀 앞엔 수백 명이 줄서고 있었다.

지난 8~12일 사이 판매된 사전예매 티켓은 진작에 동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오전 10시쯤부터 '서울국제도서전'이 트렌딩 순위에 올랐고, 부스별 이동 동선을 짜 주는 프로그램과 한정판 굿즈 정리 문서까지 공유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무엇이든 척척 답을 내놓는 시대에도 독서를 멋으로 여기는 '텍스트힙' 열풍은 계속되는 추세다. 텍스트힙이란 글을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지다'를 의미하는 '힙(Hip)하다'가 결합된 조어다.

유튜브·AI 등 '잼컨' 넘치는 시대…"종이 넘기는 즐거움"을 찾아서

긴 대기 시간에 참관객들은 바닥에 앉아 책을 읽거나 샌드위치 등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백팩을 맨 이들 사이에 일부는 캐리어를 끌고 오기도 했다. 참관객 중엔 2030 여성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야간 교대 근무를 마치고 퇴근 대신 도서전을 찾은 김지은 씨(20대·여)는 "미리 카페에 가 있으려 했는데 A홀 쪽 줄이 너무 길어 B홀 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1년에 대략 5~6권 정도를 읽는다는 김 씨는 "'대도시의 사랑법' 같은 소설 기반의 영화들이 많아지면서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평소 인문학책을 즐겨 읽는 대학생 안혜인 씨(21·여)는 "서민하 작가의 신간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첫 도서전 참가를 위해 창원에서 친구와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안 씨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디지털 네이티브란 '출생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로, 통상 1980년~2000년 사이 출생자를 의미한다.

안 씨는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를 잡는 것이 손에 책을 쥐는 것보다 더 익숙하다. 하지만 안 씨는 "다른 콘텐츠는 너무 도파민이라 책을 읽으며 편안함과 여유를 가지고 싶어 하는 듯하다. 종이를 넘기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도 있다"며 '텍스트힙'이 유행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안 씨와 함께 온 대학생 이세림 씨는 "원래 책을 보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홍보하면서 독서 흥미를 유발한 것 같다"며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도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6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한 참관객들이 책을 담고 있다. 2026.06.24/ⓒ 뉴스1 한민아 수습기자
AI 시대에 더 귀해진 '질문하는 인간'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에게 다가간 최초의 인간 이후로, 인간은 그 불로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AI라는 불도 다르지 않다.문제는 불이 아니라, 이 불로 어떤 질문을 벼려내느냐다."(개최사 중)

올해 도서전은 AI 시대 인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Homo duduri)'다.

두두리는 도깨비의 원형이자 신화적 존재로 대장장이의 옛 이름이다. 몸이 불에 탈 수도 있지만 도망치지 않고 불을 다루는 슬기를 익힌 두두리처럼 인간은 AI의 불길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묻는다. 주최 측은 책이야 말로 인간들이 쌓아온 '위대한 질문들의 기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참관객들도 이같은 주제 의식에 공감한다. 안혜인 씨는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AI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가 시대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4일 서울시 강남구 코엑스 전광판에 2026 서울국제도서전 홍보 포스터가 띄워져 있다. 홀은 도서전에 참여하려는 관객 줄로 가득 메워졌다. 2026.06.24/ⓒ 뉴스1 권진영 기자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은 AI가 모든 것에 너무 쉽게 답을 탁탁 내주다 보니 사람들이 안주해 자신만의 답을 찾으려 하는 수고를 잘 안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디지털 기술이 과도하게 발전할수록 사람의 뇌는 퇴화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지만, 그런 위기감이 들수록 텍스트힙 현상이 유행하며 책을 통해 지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도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공동주최하는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는 18개국 538개 사가 참가한다. 17개국 535개 사가 함께한 지난해 대비 소폭 규모가 확장됐다. 지난해 참관객은 약 15만 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28일까지 열리는 올해 도서전엔 얼마나 많은 관객이 모일지 주목된다. 행사장 내부에는 도서뿐만 아니라 각종 굿즈와 사진 부스 등 다양한 체험형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