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룬이들이 모여 해낸이로…따로 또 함께 '어드민 나이트' 인기

회식·술자리 대신 '느슨한 연대' 찾는 젊은이들
"나만이 아니구나"…안도감과 해방감이 또다른 동기 부여

지난 21일과 22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열린 '어드민 나이트' 모임 중 참가자들이 오늘의 일거리를 수행할 노트북·테블릿·책·뜨개감을 모아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윤주영 기자

"자, 그럼 각자 돌아가면서 무엇을 할 건지 얘기해 볼까요?"

서울 관악구에 어둠이 깔리면 시작되는 모임이 있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 9~10명 정도의 참석자들은 조용히 등장해 자기소개와 함께 '오늘의 할 일'을 발표한다.

독서, 자격증 공부, 인터넷 강의, 이력서 작성, 뜨개질까지…. 각자의 업무를 수행할 노트북, 태블릿 등 도구를 모아 인증샷을 찍고 나면 본격적으로 모임이 시작된다. 약 2시간 동안 강도 높은 몰입을 통해 '미룬 일'과 정면승부하는 '어드민 나이트'(Admin Night)다.

외국어라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어드민 나이트는 우리말로 치면 '야간작업 모임'에 해당한다. '각할모'(각자 할 일 하는 모임)라는 말로도 통한다.

미국 등 해외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한 어드민 나이트, 각할모는 최근 국내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이·책방 등을 통해 성행하고 있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대비 2026년 1분기에 '각할모' 키워드가 포함된 신규 모임은 12배 증가했으며, 모임 신규 가입자는 25배나 뛴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식·술자리 대신 자기 계발이나 개인 업무에 시간을 쓰려는 흐름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어드민 나이트의 묘미는 '거리감 있는 연대'에서 온다. 지정석이나 사감 선생님이 없는 대신 분위기 좋은 음악과 소소한 나눔이 공간을 채운다. 취재진이 방문한 한 어드민 나이트에서는 자격증 공부를 위해 참가한 한 취업준비생이 집중력 향상을 위한 레몬, 딸기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하루가 가기 전 무언가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은 이들이 모여 말없이 집중하는 모습은 실제 성취로도 이어진다. 실제 취재진이 지난 21일과 22일, 총 2차례 방문한 한 어드민 나이트에서는 참가자의 90% 이상이 각자 목표한 분량의 업무를 해냈다.

일부 참가자는 "오늘 할 일을 하면서 (목표치보다) 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조금 아쉬운 마음에 마무리를 하게 됐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실제로 함께 집중하는 경험은 효율성을 끌어올린다. 심리학 개념인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ion)'에 따르면 사람은 혼자보다는 청중·경쟁자·동료 등 타인과 함께 할 때 과제 수행 능력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효과를 노리고 물리적·가상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을 뜻하는 '보디 더블링(body doubling)'이라고 부른다.

틱톡에 'admin night'을 검색한 결과 갈무리

어드민 나이트는 사회와 연결되고자 하는 노력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뜨개질감을 준비해 온 이수현 씨(가명·23)는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준비하며 시간이 좀 뜨다 보니 계속 집에만 있게 되더라"라며 "스스로 사회성을 유지하고자 굳이 이렇게 나오게 됐다. 씻고 옷 갈아입고 나오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 되지 않도록 밖에 나가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끈끈한 친목을 다지는 동아리 활동과는 결이 다르다. '야자감독이라는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지난 3월 5일부터 총 16회 어드민 나이트를 개최한 운영자 최경원 씨(29)는 "보디 더블링은 유지하되 오로지 생산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운영진과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이렇게 수요가 많을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그가 이끄는 그룹에는 총 176명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최 씨는 "귀가 후 집에서 무언가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데 의지가 부족한 분, 그렇다고 그 일에 딱 맞는 모임을 찾기는 어려운 분, 퇴근 후 시간만큼은 사람과 소통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은 분들께 어드민 나이트를 추천한다"고 했다.

지난달 송파구의 한 서점에서 어드민 나이트를 체험한 신 모 씨(30대)는 "학교나 회사 안에서의 친목은 서로의 배경을 잘 알고 있어 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나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스트레스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어드민 나이트는 굳이 개인 정보를 몰라도 된다는 점에서 마치 낯선 여행지에 온 것 같은 심리적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만 계획을 미루는 게 아니구나, 나만 책 읽기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위로를 얻게 되고, 이것이 다시 동기부여로 이어진다"는 감상을 남겼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드민 나이트가 "'느슨한 연대'의 일종으로, 집단은 유지하면서도 개인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 문화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모여 살다가 최근에 와서 개인적 성향이 나타났기 때문에 고독감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