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으로 생명 나눈 부모…그 뜻 따라 걷는 자녀들

"아버지 병 공부하려" 의대 진학한 딸…"따뜻함 잇겠다" 간호사 꿈 키운 아들
뇌사 장기기증자 중 40·50대 절반 가까이…"우리 사회의 숨은 영웅"

2026년 D.F장학금을 전달받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 21명./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생의 마지막 순간 장기기증으로 타인에게 새 삶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증인의 자녀들은 고인의 뜻을 가슴에 새기며 각자의 꿈을 다짐했다.

재단법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3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제7회 D.F(도너패밀리) 장학회 장학금 수여식'을 열고 장기기증인 유자녀 21명에게 총 35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D.F장학회는 장기기증인을 기억하고, 유자녀들이 경제적 제약 없이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며 생명나눔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2020년 출범했다.

장학회는 이날까지 총 93명의 기증인 유자녀에게 1억4926만 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으로 구성된 도너패밀리 17명도 유자녀 장학금 마련을 위한 기부에 직접 참여했다.

이날 대표 장학생으로 소감을 발표한 정지산 씨(31·남)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뒷모습은 삶의 이정표가 됐다"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어 대학 졸업 후 3년 6개월간 사회복지사로 일했다"고 말했다. 지산 씨의 아버지인 고(故) 정성길 씨는 지난 2010년 5명에게 새 삶을 주고 세상을 떠났다.

지산 씨의 새로운 꿈은 간호사다. 지산 씨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며 "환자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생사의 기로에 선 이들을 돕는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어 대학 편입을 결심했다"라고 했다.

지산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저를 바라보던 아버지 눈에는 항상 따뜻함이 있었고, 그 따뜻함을 눈에 담고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가 되겠다"며 "아버지가 장기기증으로 실천한 사랑을 병원 현장에서 간호 돌봄으로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D.F장학금을 전달받은 김지윤 장학생./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함께 장학금을 받은 김지윤 씨(20·여)의 아버지 고 김태업 씨도 2012년 신경성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며 5명에게 장기를 기증했다. 지윤 씨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였다. 지윤 씨는 아버지가 앓던 질환을 공부해 보고 싶은 마음에 의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의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윤 씨는 "아버지가 어릴 때 어디 놀러 가자고 하면, 언니랑 내가 항상 싸웠는데, 그 사이에서 중재해 주셨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지윤 씨는 당초 신경외과를 희망했지만, 아이들을 좋아해 소아신경외과 전공 진학을 꿈꾸고 있다.

지윤 씨는 학업과 함께 아르바이트와 과외도 병행하고 있다. 생활비는 따로 어머니로부터 받지 않는다고 한다. 어머니 최윤미 씨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딸 둘 모두 하고 싶었던 전공을 스스로 찾았다"면서 "딸들이 너무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웃어 보였다.

본부에 따르면 2024년 국내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는 3096명으로, 하루 평균 약 8.5명에 달한다. 본부는 "장기이식 외에는 치료법이 없는 환자들이 매해 2000~3000명씩 늘어가는 가운데, 일면식도 없는 이를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 생명을 나눈 기증인들은 우리 사회의 숨은 영웅"이라고 했다.

한창 학업 지원이 필요한 자녀를 두고 세상을 떠난 기증인도 상당수로 나타났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뇌사 장기기증자는 2205명인데, 이들의 평균 연령은 49.1세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0~50대 비율은 45.6%이다.

유재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큰 아픔 속에서도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결정을 통해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장기기증자를 기억하고 예우하는 활동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