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전처 "건설사 여직원 때 만나…눈빛 돌변 땐 소름, 내 동생도 죽였다"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화성 연쇄 살인범 이춘재의 전처가 "눈빛이 돌변할 땐 지금도 소름 끼칠 정도"라고 회상하며 그와의 악연을 털어놨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괴물의 시간' 2부에서는 이춘재의 전처 이 모 씨가 출연해 그의 두 얼굴에 대해 회상했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그러던 중 경찰은 DNA 대조를 통해 그를 화성 연쇄 살인의 진범으로 특정했다.
이 씨는 "가족들도 나를 원망한다. 나보고 '네가 그 사람(이춘재)을 만나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한다. 나도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예쁘게 살았을 것 같다.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 그런 사람을 만난 건 제 잘못일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들 악연의 시작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씨는 "나는 건설회사 여직원이었고 그 사람은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그쪽 일은 새벽에 시작하지 않나. (이춘재는) 한 번도 시간을 어긴 적 없이 철저했다"라면서 "그 사람은 피부도 하얗고 작업복도 다림질해서 입고 다녔다. 서류 같은 걸 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 사람이 먼저 대시했다. 그때 '남자가 참 손이 곱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삐삐 같은 것도 없어서 유일한 연락 방법은 집 전화였다. 내가 가서 만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저한테 전화해서 '어디로 와라' '언제 만나자' 이런 식이었다. 그거 말곤 나빠 보이는 면이 별로 없었다. 그때가 출소하고 얼마 뒤라는 걸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당시 이춘재는 강도 예비, 폭력 혐의로 집행유예 출소 후 엄마가 취직을 부탁해 둔 친척의 건설회사에서 포클레인을 배우던 중 이 씨를 만난 것이다.
이 씨는 "친구가 장기로 빌린 모텔방이 있었는데 한번은 밖에 시끄러웠다. '무슨 소리지?'하고 창문을 열었는데 모텔 옆 주택에서 시체가 실려 나갔다. 그 사람도 제 옆에서 그 장면을 같이 보고 '너무 무섭다'고 했다"라면서 "그 사건도 이춘재가 한 거라는 말을 경찰에게 들었을 때는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왜 안 죽였을까, 나는 왜 살려뒀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경찰이 '아이 엄마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생리를 안 해서 이춘재에게 병원에 같이 갔는데 임신이었다. 제가 미혼모 시설을 알아보거나 수술하겠다고 했더니 (이춘재가) 안 된다면서 화성 집에 데려갔다. 그땐 감사했다"라며 "그 사람이 자기 부모님께 '아기 가졌어. 결혼할 거야. 내가 직장을 구할 건데 얘가 당장 갈 데가 없어'라고 했다. 어머니는 '임신했다'는 소리에 탁 주저앉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이춘재는 일주일도 안 돼서 포크레인 일을 한다며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에 이 씨는 혼자 시부모와 함께 화성집에서 살게 됐다며 "결혼식은 출산 이후로 미뤘다. 무당이 그러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무당을 맹신했다"고 이춘재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또 이 씨는 이춘재가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고, '루틴'이 있어 그거에 맞춰 움직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루틴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안 되면 저한테 그냥 화풀이했다. 눈빛이 돌변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도 소름 끼치는데, 그러면 절대 건들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지금도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건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잠깐 집 앞에 아이 데리고 외출하고 오면 아무리 두드리고 전화해도 절대 문을 안 열어준다. 열쇠공을 불러서 들어간다. '왜 문을 잠그냐'고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었다"라며 "열쇠공이 드릴로 겨우 문을 열었는데 걸쇠가 딱 걸려 있다. 그걸 (이춘재가) 식탁에 앉아서 가만히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춘재가) 이유 없이 저를 때리고 있었는데 아이가 자다 깨서 기저귀 바람으로 나왔다. 아이는 엄마가 맞고 있으니까 아빠를 말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쳐서 아기가 떼구루루 굴렀다. 자기 자식을. 그걸 보고 어떤 엄마가 가만히 있나. 대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주먹을 정면으로 맞았다. 그 와중에 병 주고 약 주더라. 멍 빨리 없어진다고 약을 사다 줬다"고 기억했다.
이 씨는 도망쳤을 때도 떠올렸다. 그는 "문을 안 열어줘서 친구 집에서 자고 왔는데 자꾸 '가출'이라고 하더라. 12월 한겨울이었는데 문을 걸어 잠그더니 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그리고 창문을 다 열고선 거실 가운데에 무릎 꿇고 앉게 했다. 추워서 팔로 가리려고 하니까 뒷짐 지라고 했다"라면서 "이춘재는 잠바 입고 이불 뒤집어쓰고 안방에 앉아서 절 지켜봤다. 새벽이 돼서야 문을 닫고 잤다. 그 사람이 코를 골길래 맨발로 친정에 갔다. '어쩌면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제가 도망치지 않았다면 동생이 살지 않았을까 수없이 생각했다. 천사 같았던 동생이 죽은 게 나 때문 아닐까, 그냥 내가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라며 오열했다.
한편 이춘재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살인 15건, 강간 및 강간 미수 34건을 저질렀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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