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돌아오면 2차 가해도 늘어…이태원특별법에 처벌 조항 추가해야"
경찰 신고 과정서 N차 가해 발생…"처벌 조항, 상징적 의미 커"
"생명과 안전은 정쟁 사안 아닌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 되새겨 주길
- 권진영 기자, 강서연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강서연 기자
마음이 아프고 움츠러드는 시기에, (기일이 돌아와) 주목을 받으면 그에 비례해 2차 가해성 댓글도 같이 늘어납니다.
지난 24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 '별들의 집'에서 만난 송해진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송 위원장은 참사 당시 생존자로 구조됐다가 43일 뒤 세상을 떠난 고(故) 이재현 군(16)의 어머니다.
뉴스1은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유족과 정부·시민 사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송 위원장과 함께 참사 후 남겨진 과제들을 짚어보았다.
2025년은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시작'의 한 해였다. 지난 1월에는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특별법)이 마침내 시행됐고 지난 6월부터는 2022년의 진실을 규명할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가 시작됐다.
송 위원장은 "앞으로 나가는 시작이다. 변화라고 해야 할까, 희망이 좀 보이는 한 해였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시작 단계다. 아직 4개월 정도밖에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자료는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유족과 특조위의 손이 닿을 수 없고, 2차 가해를 방지할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족에 대한 대표적인 2차 가해 사례로는 김미나 창원시의원을 들 수 있다. 그는 참사 6일 만인 2022년 11월 4일부터 12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페이스북에 막말을 적은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1·2심 모두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유예 기한 2년이 지나면 김 시의원의 언행으로 인한 죄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된다. (이태원 유족 '막말' 김미나 손배 승소…"2차 가해 책임 끝까지"(종합))
그나마 일보 진전이 있었다면 지난 7월 경찰청이 신설한 '2차 가해 범죄수사팀'을 들 수 있다. 총경급 팀장을 포함해 19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2차 가해 근절을 위한 정책 기획, 피해자 보호 체계 구축 등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참사 전반과 유족들에 대한 2차 가해 사건을 수사할 검·경 합동 수사팀도 꾸려졌다.
송 위원장은 "2차 가해 수사본부 같은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수사 요청을 해야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이라며 "3년여간 당해왔던, 겪어왔던 일을 다시 끄집어내서, 직접 (가해 게시물을) 찾아서 피해자 스스로 신청하고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에 처벌 조항이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위원장은 "3주기 등 큰 (추모) 행사가 다가오면 그 자체로도 마음이 아프지만 주목도와 비례해 늘어나는 2차 가해성 댓글 등 때문에 또 움츠러들게 된다"며 "처벌 조항이 들어가게 되면 굉장히 큰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유족의 바람은 정치권도 인식하고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유가족협의회와 만나 "2차 가해 방지를 담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개정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처벌 조항과 함께 필요한 변화는 또 있다. 심리적 지원이다. 이태원 참사 유족 심리 치료는 국가 트라우마 센터가 주축이 돼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지원에 그친다.
예컨대 상담 20분 전 갑자기 '잠시 후 전화를 걸겠다'며 문자 통보한 뒤 대뜸 "잘 지내시냐, 어디 불편한 것 없냐"고 묻는 식이다. 마음을 터놓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된 내담에 송 위원장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송 위원장은 "당사자들의 입장이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이었다. 그게 상담을 당한 것이지 무슨 상담을 한 거냐"고 꼬집었다.
그는 "유족분들 중 일부는 근방 내과나 가정의학과에 가서 수면제를 처방받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잠깐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아 먹고 마는 경우가 있다"며 "잠을 못 자는 분들끼리 그렇게 처방받은 약을 또 나눠 먹기도 한다"고 했다.
도움이 안 되기는 참사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본 근로자를 위한 치유휴직 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법률상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위한 치유휴직은 특별법 제정 후 1년 동안 신청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지난해 5월부터 신청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법안 시행이 늦어지며 본격적인 신청 접수는 4월 1일에야 시작됐다. 유족들이 치유 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실제 기한은 고작 50일 정도였다.
송 위원장은 "3년 사이 힘든 (유족) 분들은 일을 그만두셨다. 신청 가능 기한 자체도 짧았던 데다 조건도 까다로워 달랑 20명 남짓 신청했다"고 한탄했다. 이태원참사 피해구제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치유휴직은 근로자에 한하며 그마저도 '1개월 미만 고용 근로자'는 제외된다.
국가는 치유휴직자에게는 1인당 월 최대 198만 원을, 대체인력에 대해 월 최대 99만 원을 지급하지만 프리랜서·자영업자 유족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송 위원장은 참사 유가족이 됐을 때 가장 힘든 점으로 "세상에 나만 혼자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때"를 꼽았다. 충격으로 인해 자꾸만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하게 되고 그렇게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가장 큰 원동력은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유가족 활동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와주신다. 경제적으로 이익이 돼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인 관심을 보여주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이 사회에서 구성원으로서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된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를 떠올릴 때면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각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다들 먹고살기에 바쁘고 사건 사고가 잦다. 그때마다 위기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사안은 꾸준히 모두가 관심을 갖고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 안전은 정쟁 사안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는 인식이 굳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반면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법은 보다 다채로워지길 희망했다.
송 위원장은 "당사자인 엄마, 아빠도 아이를 생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사진을 못 본다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러면 또 아이에게 미안할 것 같다"며 "아프다는 것이 고정된 상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계속 생각해 보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와 아이에 대한 기억이 여러 내용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realk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