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교육' 받은 실험 비글, 안아서 눕히자 보인 행동에 '먹먹'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실험실에서 구조된 비글은 케이지에서 안아 꺼내진 후에 항상 실험을 당했기 때문에, 이렇게 안았다가 눕히면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정말 마음 아픈 얘기인데, 실험을 하기 위해 '참는 교육'을 받거든요.

김세현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조심스레 품에 안은 비글 '팔멍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품에서 천천히 눕는 팔멍이의 모습에 행사장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아픔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비글의 눈빛이, 어떤 말보다 깊은 울림을 전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제2회 실험비글 입양제 '비행기(비글의 행복을 기원)'는 비글들의 새 삶을 응원하는 방문객들로 가득했다.

활발한 에너지가 특징인 견종이지만, 이날 만난 비글들은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행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리도 짖지 않았다.

김세현 대표는 "실험실에서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곧 고통이었던 아이들"이라며 "안으면 아프고, 만지면 두려웠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이렇게 얌전하고 조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은 약 500만 마리. 그중 80% 이상이 최고 고통 등급(D·E) 실험에 이용됐고, 대부분은 생을 마치기 전 구조되지 못한다. 실험 후 구조돼 새 삶을 얻는 비글은 전체의 0.01%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날 행사에 모인 비글들은 기적의 생존자들이었다. 지난 6월 열린 제1회 입양제에서 올해 구조된 45마리 중 7마리가 국내 가정으로 입양됐다. 이날은 그 가족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입양제 기획을 맡은 강소영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식용견 문제를 계기로 동물권에 눈을 떴고, 실험동물 문제를 접하면서 비글 입양제를 기획하게 됐다"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동물권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제1회 입양제를 통해 입양한 가족들의 입양증서 전달식, 시몬스의 후원으로 진행된 펫매트리스 'N32 쪼꼬미' 증정식, 그리고 바자회·펫타로·펫마사지·미용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됐다. 이날 10마리 넘는 비글들이 참석했지만 그 어떤 소란도 없었다.

가족을 찾으러 온 비글 '오멍'을 임시 보호하고 있는 봉사자는 "오멍이는 처음 집에 왔을 때부터 잘 적응해 새로운 세상을 점차 배워가고 있다"며 "얌전하고 사람과 간식을 좋아해 어딜 가든지 잘 적응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세현 대표는 입양된 친구들을 소개하며 "입양 갈 당시만 해도 꼬리가 말려 있고 몸이 얼어 있던 비글들이, 지금은 꼬리를 높이 들고 사람 품에 안긴다"며 "이 친구들처럼 이번 행사에 가족을 찾으러 나온 비글들도 말려있던 꼬리를 활짝 필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수많은 동물들이 불필요한 고통 속에 실험대 위에 있다"며 "이 현실을 사회에 알리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동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해피펫]

badook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