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복구' 외치더니…정부 전산망 마비에 일상이 멈췄다

결재는 펜, 민원은 종이로…등본 못 떼고 통장 개설도 막혀

30일 오전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4일차 합동감식이 시작된 가운데, 합동감식반이 화재 현장에서 반출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운반하고 있다. 2025.9.3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정부 핵심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행정 전반과 국민 생활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과거 '3시간 내 복구'를 강조해온 정부의 약속은 이번 사태에서 무력화됐고,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우체국 금융과 우편, 공공입찰, 교통·복지 서비스 등 전국 647개 시스템이 멈추며 일상 업무가 사실상 중단됐다.

30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자원) 전산실 화재로 현장에 있던 96개 서버가 직접 피해를 보았고, 과열 위험으로 나머지 551개 서버도 차례로 가동이 중단됐다.

현재 87개 시스템만 복구돼 500개라 넘는 시스템이 여전히 '정상화 대기' 상태다. 정부는 일부 시스템을 대구센터 클라우드로 이전하고 있지만, 복구까지 최소 4주 이상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30일 오전 기준 복구된 시스템은 전체의 13%에 그친다.

행정망 마비는 공공기관 내부의 업무 처리에도 직격탄이 됐다.

정부 전 부처가 사용하는 '온나라시스템' 접속이 차단되면서 문서 작성과 결재, 업무 보고가 전면 중단됐다. 각종 민원 접수도 수기로 진행되고 있어, 이후 이를 다시 전산 입력하는 이중 작업이 불가피하다. 행정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고, 복구 지연이 장기화될수록 업무 공백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이 체감하는 불편은 더욱 직접적이다.

전국 우체국에서 예금과 송금, 택배 발송 같은 기본 금융·물류 서비스가 중단됐다. 정부24와 국민신문고 등 온라인 행정서비스가 중단되며, 주민등록 등·초본과 가족관계증명서 발급도 어려워졌다.

일부 은행에서는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이 되지 않아 계좌 개설, 대출 심사 등 금융 업무가 중단됐다. 나라장터를 포함한 조달 시스템 마비로 기업의 입찰 참여도 차질을 빚고 있다.

공항 검역 시스템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인천공항 자동검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여행객이 장시간 대기했고, 지방자치단체 역시 지방세 납부와 민원 처리에 혼선을 겪고 있다.

정부는 과거 대규모 전산 장애 때마다 '3시간 내 복구'를 표방해왔지만, 이번 사태는 이중화와 백업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년 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강화된 정부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백업 시스템만으로는 정부 행정의 연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전산 인프라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