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 피하니 '수리비·월세인상'…반지하 주민 "너무 서럽네요"

리모델링·수리 명목 월세인상 요구…보증금 요구엔 '연락두절'
"앞으로가 더 위기…'지하·반지하' 주택 폐지하면 갈 곳 없어"

집중호우로 인해 중부지방 곳곳이 침수피해를 입은 가운데 11일 오후 경기 군포시 산본동 금정역 일대 한 반지하 가정집의 방범창이 뜯겨져 있다. 이곳 주민은 지난 8일 침수로 인해 고립됐으나 당시 경찰과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다. 2022.8.11/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한병찬 기자 = "물폭탄을 피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큰 폭탄을 만난 기분입니다. 도배, 장판 교체에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다음달부터 월세를 10만원 올린다고 통보하더군요. 한 달 동안 집도 비워달라는데 월세는 또 그대로 받습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심모씨는 며칠째 친구집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지난 9일 폭우로 집 전체가 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심씨는 지방출장으로 화를 겨우 면했지만 옷, 매트리스 등 가재도구가 모두 물에 잠겨 떠나야 했다.

115년 만의 폭우로 시름에 잠긴 사람들은 심씨 말고도 많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것도 서러운데, 집주인과 수리비, 월세 문제로 갈등을 겪기 때문이다. 일부 세입자들은 며칠전 서울시가 꺼내든 '지하·반지하' 주택 퇴출대책으로 주거지를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 원룸에 거주중인 정모씨는 "처음에는 집주인이 수리를 해준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창문을 닫지 않고 밖에 나가 피해가 더 커진 것 아니냐'며 따져 너무 서러웠다"며 "몇 년 전부터 배수구가 막혀 역한 냄새가 나는 건 이웃 모두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반지하에서 딸과 함께 거주 중인 40대 직장인 김모씨도 "폭우로 인해 집 안에 물이 발목까지 차 올라 도저히 집에서 잘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집 안에 들어가면 곰팡이 냄새가 가득하다"며 "더 이상 이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문자를 수차례 남겼지만 연락이 안온다"고 털어놓았다.

집중호우로 중부지방 곳곳이 침수피해를 입은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시 중랑구 일대 한 반지하 가정집에서 거주민 김모씨(68)가 침수피해 복구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News1 한병찬 수습기자

반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앞으로가 더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에서 이번 폭우를 계기로 '지하·반지하' 주택 폐지대책을 꺼내들면서,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부 반지하 거주민들은 벌써부터 집주인에게 '리모델링' '수리'를 이유로 퇴거통보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반지하에 홀로 거주 중인 80대 김모씨는 얼마 전 퇴거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이유가 다 똑같다. 돈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반지하 없앤다는 얘기가 뉴스에서 나오자 집주인이 용도를 변경하겠다며, 내년에는 다른 집을 알아보시라고 말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중랑구 중화동 반지하에서 25년간 거주한 김모씨(68)도 "(반지하 퇴출대책은) 현실성이 없다"며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주고 반지하에 거주 중인데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창신동 반지하에서 살고 있는 김모씨(57)는 "항상 이야기만 꺼내고 나중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흐지부지된다"며 "전국에 반지하 세대가 한둘인지 아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반지하를 없앤다는 것은 '여기서 살지 마라'면서 강제로 쫓아내는 것과 뭐가 다르나"고 덧붙였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민들은 온라인상에도 많았다.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집주인이 다음주에도 비가 온다며 조금 있다가 수리를 하자고 한다' '동사무소에서 재난지원금 200만원을 받았는데 집주인이 절반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는 글이 올라왔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