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일제강점기 의병장 강기동 선생 재조명

의병장 강기동 선생(용산구 제공).ⓒ 뉴스1
의병장 강기동 선생(용산구 제공).ⓒ 뉴스1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서울 용산구는 구 소식지 '용산구소식'을 통해 의병장 강기동(1884-1911) 선생을 재조명했다고 16일 밝혔다.

강기동 선생은 1884년 서울 명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일본군 헌병보조원으로 발탁돼 경기도 양주군에 위치한 고안헌병분견소에서 근무했다.

이때 의병 2명이 일본 경찰에 붙잡혀오자 강기동 선생은 이들을 탈주시키고 본인도 의병장 이은찬(1878-1909)이 이끄는 의병부대에 들어갔다. 이후 경기도 포천, 양주 등지에서 활약했다. 당시 일본 군부가 강기동 선생에게 500원이라는 큰 현상금을 내걸었을 정도였다.

1909년 9월부터 시작된 '남한대토벌' 작전을 피해 북간도로 이동하던 강기동 선생은 결국 1911년 2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일본군에 의해 체포됐다. 이어 서울에서 조사를 받고 용산 군사령부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강 선생은 일본군 '위수감옥'에 수감됐던 것으로 보인다. 1909년에 만들어진 위수감옥은 서대문형무소와 달리 군형법을 어긴 일본 군인, 군속들을 가두기 위해 만든 시설이었다. 일제는 선생을 군속(헌병보조원) 신분으로 처벌했던 것이다. 감옥은 지금도 용산 미군기지 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선생의 재판에는 아카시(明石) 조선총독부 경무총장을 비롯한 거물급 인사들이 두루 입회했다. 아카시는 의병탄압과 무단통치의 주범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군에 의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한 강기동 선생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다.

구 소식지는 매달 6만4500부 발행된다. '용산기지의 역사'는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연재물의 하나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기지 내 문화유산과 자연물 18곳을 소개했다. 인물 소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강기동 선생은 후손도 남아있지 않다"며 "용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애국선열인 만큼 우리 구민들이라도 선생의 아들딸이 돼 그를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unoo5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