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 '소명의 삶' 다한 故임세원 교수 오늘 발인

우울증 극복후 치료·예방 헌신…"죽고싶은 사람은 없다"
유족 "고인 뜻대로 정신질환자 낙인 분명히 반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News1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생전 정신질환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진료·저술과 프로그램 개발 활동에 매진했지만 자신이 담당한 환자에 의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의 영결식과 발인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서 엄수된다.

임 교수는 지난달 31일 평소 양극성정동장애(조울증)를 앓던 박모씨(30)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달아나는 순간까지도 의료진의 안전을 챙긴 임 교수의 빈소에는 지난 2일부터 수많은 추모객이 몰렸다.

장례식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헌신해온 그의 궤적을 존경을 담아 추모했다. 고인의 생전 소명의식대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분명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유족의 품격에도 경의를 표했다.

◇"순순히 어둠 받아들이지 않겠다"…우울증 예방에 헌신

임 교수는 '자살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더욱 빛나던 사람이었다. 그는 우울증을 극복한 자신의 경험을 담아 지난 2016년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펴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이 감정의 심연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소개하면서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삶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학계에서도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을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우울증 및 불안장애와 관련된 학술논문 10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했고, 2011년에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했다. 그는 "나는 손재주도 없고 건강도 좋지 못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며 프로그램을 개발한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임 교수는 이렇게 개발한 '보고 듣고 말하기' 프로그램을 군인들에게 교육할 때는 무보수 재능기부로 임했다. 이같은 공로들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선정한 '생명사랑대상'을 받았다.

2일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그가 돌봤던 환자들과 지인들은 이런 임 교수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며 지난 2일과 3일 양일간 빈소에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임 교수에게 12년 이상 진료를 받았다는 주모씨(55·여)는 "선생님께 왔다 가면 마음이 편하고 건강도 좋아졌는데 어떤 선생님을 의지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고 눈시울을 훔쳤다.

또다른 환자인 정모씨(55)는 "아들이 안좋은 일로 목숨을 끊으려다 은인인 임 선생을 만나 잘 살고 있다"며 "어제 밤새도록 울고 천안에서 달려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생전 메시지 "정신질환 낙인 안돼"

임 교수의 생전 기고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들에는 정신질환과 싸우는 환자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나 있다. 임 교수의 유족도 이런 고인의 뜻을 받들어 정신질환자에게 사회적 낙인이 찍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지난해 10월 '강서 PC방 살인사건' 때 참혹한 응급실 풍경에 관해 쓴 남궁인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의 글을 읽은 후 자신의 SNS에 "각자의 이유로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라며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라고 적었다.

이어 "왜 이분이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글에서 그는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 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렇게 20년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은 작은 상자가 어느새 가득 찼는데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고 보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의 막내 여동생 임세희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유족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강북삼성병원 제공) 2018.1.2/뉴스1

임 교수의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동료 의사들이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임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는 "고인이 평생 환자 위주로 사셨던 것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슬픔을 삼키면서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선생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 및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정신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오전 자신의 SNS에 "임세원 교수의 동생분이 함께 모은 유족의 뜻을 말씀해주셨다"며 "이 두 가지가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kays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