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집 고치고 보람 얻어요"…장병들의 '특별한 봉사'

전북 학대피해아동가정 복구봉사 나선 35사단 임실대대
'재능기부'부터 '지역소통'까지…장병들 '보람찬 구슬땀'

전북 임실군의 한 학대피해아동가정. 부모의 방치 속에 가재도구가 정리되지 않아 쓰레기가 앞마당까지 밀려 나와 쌓여있다. 주거환경개선사업 전(왼쪽)과 후의 모습.(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제공)ⓒ News1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리쬐던 지난 8월 초. 작업용 벙거지를 쓰고 전북 임실군의 한 가정집 앞에 도착한 김유빈 상병(22)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재해(災害)라도 입은 듯 앞마당까지 밀려 나온 쓰레기 더미는 집을 어지럽게 헝클어뜨렸다. 집 안에는 성별조차 알아보기 힘든 한 여성이 그를 흘겨봤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쯤 됐을 법한 남자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집을 돌아다녔다.

김 상병과 함께 도착한 35사단 임실 2대대 6중대 장병 10여명은 이내 팔을 걷어붙이고 조심스럽게 쓰레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례없이 긴 폭염이 전국을 가마솥처럼 달궜던 지난여름, 남다른 이유로 구슬땀을 흘린 장병들이 있다. 전라북도 동부권역의 4개 시·군인 남원시, 순창군, 장수군, 임실군을 돌며 학대피해아동의 가정을 복구하는 '가정환경개선사업'이 이들의 '특수임무'다.

학대피해아동가정의 '쓰레기집'을 복구 중인 35사단 임실2대대 6중대 장병들.(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제공)ⓒ News1

◇학대와 방치가 불러온 '쓰레기집'…팔 걷어붙인 장병들

"무서웠습니다. 관리하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어머니가 계시고, 요즘 찾아볼 수 없는 '이'까지 가진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도 아팠고요."

두 차례에 걸쳐 학대피해아동가정 복구사업에 참여했다는 김 상병은 피해가정의 첫인상을 '무서웠다'고 표현했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북지역에서 접수된 아동학대 피해신고는 총 2006건으로 전국 16개 지역 중 경기(6564건), 서울(4061건), 인천(2350건) 다음으로 많았다.

지난해부터 임실대대와 함께 아동학대 피해가정을 복구·치료하는 사업을 펼쳐온 굿네이버스 전북동부지부 이상희 대리(33)는 "접근이 쉽고 젊은 자원봉사인력이 많은 서울·경기 지역과 달리 전북지역은 조손가정(65세 이상 조부모와 만 18세 미만 손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많고 인구 평균 연령이 높아 도움이 필요한 피해가정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대리는 특히 "신체·정서·성 학대와 같은 아동학대는 대부분 아동과 집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방임' 학대와 함께 발생한다"며 "이른바 '쓰레기집'이라고 불리는 피해가정을 복구할 일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6 전국아동학대현황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례 1만8573건 중 2개 유형의 학대가 중복으로 발생한 사례는 8908건(47%)으로 집계됐다.

김 상병도 "학대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방치된 아이를 보면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며 "군대에 입영하기 전부터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지만 학대아동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피해가정의 창고와 화장실 수리, 냉장고 정돈 등을 도맡았다는 김 상병은 언제 다 치울까 막막했던 '쓰레기집'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난 뒤 "봉사활동을 하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꼈다"며 "더 많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35사단 임실2대대 6중대장 김효영 대위(29), 김유빈 상병(22), 이한주 일병(21).(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제공) ⓒ News1

◇'재능기부'부터 '지역사회 소통'까지…"힘들지만 보람차요"

"솔직히 힘들죠. 하지만 피해가정을 제 손으로 직접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힘든 감정은 씻은 듯 사라져요."

김 상병과 함께 봉사활동에 자원한 이한주 일병(21)은 빽빽한 전투훈련 속에서 봉사활동까지 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힘들다"고 고백하면서도 "깨끗해진 집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너도나도 '또 봉사활동을 가자'며 장병끼리 보람을 나누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가정환경개선사업에서는 뜻밖의 '재능기부'도 이뤄진다. 장병들을 이끌고 봉사활동에 참여한 임실 2대대 6중대장 김효영 대위(29)는 "지역 특성상 농업과 공업, 벽지 도배 등에 재능이 있는 장병들이 많다"며 "봉사활동에 참여한 장병들은 저마다의 특기를 살려 전문적으로 피해가정을 복구하는 재능기부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 대위는 특히 학대피해아동가정 환경개선사업의 장점으로 군부대와 지역사회의 '소통'과 '장병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꼽았다.

그는 "후방부대의 특성상 민·관·군 합동으로 펼치는 군사작전이 많다"며 "봉사를 하면서 형성된 유대감을 토대로 지역사회와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 부대만의 차별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아셨는지 주민들로부터 '농작물을 캐달라'는 부탁도 종종 듣고 있다"면서 "좋은 취지의 봉사라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됐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김 대위는 또 "가정환경개선사업은 쓰레기집을 깨끗한 가정으로 복구하는 사업인 만큼 변화 전과 후의 모습이 극적이기 때문에 봉사에 참여한 장병들이 느끼는 감정도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장병들이 봉사활동을 하며 얻은 보람은 군 생활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김 상병과 이 일병은 "변화한 가정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이어갈 계획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리도 "장병들의 봉사활동은 한 가정에 대한 '재능기부'뿐 아니라 관공서와 다른 지역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변화'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며 "일반 대민지원뿐 아니라 군대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상생하는 문화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dongchoi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