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에 위태로운 이웃들③] 전단지 알바 어머니들…"자식 짐되기 싫어"
"2시간에 2만원…겨울철에 더 일거리 없어"
"휴게시설 없어, 알아서 추위 피해야지"
- 박승희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11일 오전 8시,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8도의 한파를 뚫고 수많은 시험준비생들이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두꺼운 점퍼에 장갑과 목도리 등 온갖 방한용품으로 중무장한 채였다.
역 앞 입구에서 박모씨(59·여)는 분주한 손으로 학원 홍보용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학원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열에 아홉이 그를 못 본 체 지나쳤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손이 유난히도 시려보였다.
박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원래 이 정도는 아닌데, 오늘은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손 빼기가 싫은가보다"라며 웃었다. 길 한쪽에는 그가 2시간 동안 나눠줘야 할 수백 장의 전단지가 놓여있었다.
그는 "경제도 어려운데 자식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30대의 장성한 아들이 있지만, 결혼해 제 살림 꾸리기도 바쁜 자식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박씨는 "엄마 쉬라고 하는 자식들 말 안 듣고 용돈벌이 한다고 시작한 일인데 2시간에 2만원 벌기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멋쩍어하며 연신 핫팩을 만지작거렸다.
박씨는 "힘들면 잠깐 앉아서 쉰다"며 건물 한 쪽 계단을 가리켰다. 추위를 피할 휴게시설은 따로 없냐는 질문에 박씨는 "학원에 들어가면 되긴한데 일하는 시간이 짧아서 (번거로워서) 안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내 그는 "자꾸 이렇게 떠들면 (고용주가) 안 좋아해"라고 말하며 다시 전단지 한뭉치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겨울철에 일거리 적지만…열심히 일할 수 있어 감사"
역 건너편 카페와 학원 인근에는 털모자와 마스크, 두꺼운 점퍼로 무장한 김모씨(62·여)가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김씨는 "허리를 다쳐 채소장사를 접고부터 이 일(전단지 아르바이트)을 시작했다"며 "아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시작했는데, 겨울에는 전단지 일이 적어 한 건만 들어오면 하루이틀하고 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가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이 찬 바람이 거리를 휩쓸었다. 추위에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씨는 "오래 하다보니 돌리는 요령이 생겨 금방 끝내고 간다"며 "열심히 해야 일도 많이 들어오니까 힘을 낸다"고 웃었다.
걸음을 재촉하던 몇몇 행인은 추운 날씨에 전단지를 돌리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일부러 멈춰서 전단지를 받아가기도 했다. 박장현씨(24·남)는 "얼굴이 아플 정도의 날씨에다 관절도 안 좋으실 텐데 오래 서 있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며 "앞으로는 피하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차소연씨(27·여)는 "나한테 (전단지를 돌리라고) 시키면 한시간도 못 버틸 것"이라며 "정말 힘드실 것 같다"고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김씨는 이 나이에도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청 같은 곳에 일자리는 많이 없지 않냐"며 "내가 열심히 (전단지를) 돌리는 것을 알아주는지 그래도 꾸준히 일이 들어와서 다행이다"라고 웃었다. 또 "이 일로 돈 벌어서 아들 생일이라고 용돈도 10만원 주고 한 박스에 4만원하는 한라봉도 사줬다"며 영락없는 우리 어머니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seunghee@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