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지하철 타려면…"휠체어 리프트만 5번"

서울시 내 지하철역 365곳 중 12곳 엘리베이터 없어…주요 환승역 다수
지상 보행로 확보·역사 내 공간 부족 등 이유로 설치 미뤄져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1일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열고 있다.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김윤호 인턴기자 = "지하철 역사 내 휠체어 리프트는 이미 오래전에 철거됐어야 하는 기계예요. 10여 년 전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추락해서 한 장애인이 목숨을 잃은 적 있었죠. 우리가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를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고 아주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입니다."

지난 5일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기자와 만난 박현(40) 소장이 말문을 열었다.

박 소장은 "지난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에 설치할 수 있는 편의시설의 종류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삭제할 것을 이미 권고한 바 있지만, 아직 많은 역사에서 리프트를 대신할 엘리베이터 설치는 멀기만 하다"고 강조했다.

지하철역에서의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지적돼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상버스는 서울시 내 전체 버스의 30%에 불과하고 배차 간격이 길어 울며 겨자 먹기로 지하철을 더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뉴스1이 서울시 내 지하철역 전체에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설치됐는지 조사한 결과, 장애인이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하기 힘든 역이 아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내 지하철 역 365개 중 12개 역은 지상에서 승강장까지의 구간 내에 엘리베이터가 전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구간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도 44곳에 달했다. 이들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신 경사형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됐다.

특히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이동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 가운데 환승역이 다수인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환승역은 노선에 따라 운영하는 주체가 다르다 보니 역 이름이 같더라도 각 노선의 역사마다 엘리베이터 설치 상태가 조금씩 다르다.

건대입구역 7호선 역사, 충무로역·교대역 3호선 역사 등 환승역 건물 25곳에는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가 전혀 없거나 일부 구간에만 설치된 상태다.

신나리(29)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강사는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해 5호선 천호역에서 4호선 혜화역까지 가려면 먼저 5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탄 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말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4호선 환승 구간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비장애인이라면 천호역에서 5호선을 탄 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한 번만 갈아타면 혜화역에 도착할 수 있다.

신 강사는 "비장애인처럼 한 번만 갈아타기 위해서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면 되지만 장애인들은 두 번 갈아타는 불편함을 겪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경로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휠체어 리프트는 속도도 느리고 운행 중 고장이 자주 발생하며, 보호장치가 부실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심지어 움직일 때 나는 소리도 불쾌하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설치가 미뤄지는 이유로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 측은 지상 보행로 확보 문제를 꼽았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엘리베이터 설치 시 약 3m의 폭이 필요하다"며 "도심지에 이미 보행로와 차도가 갖춰진 상태에서 엘리베이터를 신설하려다 보면 기존 보행로 폭이 지나치게 좁아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종로3가역과 까치산역 5호선 역사와, 남구로역과 고속터미널역 7호선 역사등이 이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종로3가역 관계자는 "5호선 역사가 위치한 곳은 버스도 안 지나가는 좁은 길이라 엘리베이터가 들어올 공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3호선 종로3가역. 뉴스1 ⓒ News1

남구로역 측은 "타당성 조사 결과 역사 지상에 공간이 없어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다고 들었다"며 "휠체어를 탄 승객이 지상에서 지하 6층 승강장까지 가려면 휠체어 리프트만 5차례 타야 해 3~40분이 걸린다. 우리도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역 운영 주체들은 역사 내 공간이 부족한 점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승강로 위에 기계실이 추가로 확보돼야 하는데 그 공간이 부족해 설치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관계자는 "현재 내선 구간에 공간 부족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 측도 "역사를 먼저 짓고 나중에 엘리베이터가 들어서려다 보니 공간 문제로 어려움이 많다"며 "우리 역도 도로 바로 아래에 지어져 협소한 편인데 시내 쪽에 있는 역들은 (공간이 더욱 없을 테니) 오죽하겠냐"고 말했다.

한편 디지털미디어시티 경의중앙선 역사와 선릉역 분당선 역사 등 7곳은 휠체어 리프트를 엘리베이터로 교체할 예정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을지로4가역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등 7개 역사가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메트로는 종로3가 3호선 역사와 창동역 4호선 역사 등 4개 역사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엘리베이터 설치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돼 엘리베이터 설치를 추진 중이다.

서울9호선운영주식회사는 지난 2013년 2월부터 '휠체어 장애인고객 문자 알림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사전에 등록한 고객을 대상으로 9호선 내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이용이 어려울 때 다른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문자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신나리 강사는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나 임산부 등 교통 약자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설치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 이동권에 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던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4월부터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촉구하는 캠페인인 '지하철 여행은 엘리베이터로 시작하고파'를 진행하고 있다.

"주변을 지나던 시민들도 캠페인에 함께 참여해 사회적 공감대가 더 넓게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저희만 타겠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바람은 시민의 격려와 응원이 한데 모여 엘리베이터 설치로 이어지는 것이랍니다."

hm3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