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려고 나옵니다"…'전단지 아주머니'를 아십니까?
하루 종일 일해도 한달 100만원 남짓 벌어, "불황으로 일거리도 점차 줄었다"
단속 나오면 일당은 몽땅 과태료로…구청 "신고받으면 단속 할 수밖에 없어"
- 주성호 기자
(서울=뉴스1) 주성호 기자 = "남들 눈에는 이게 쉬워보일지도 몰라. 그런데 오래 서 있어서 그런지 허리랑 무릎도 계속 쑤시고 겨울에는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온다니까."
지난 9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만난 김모(69·여)씨는 자신을 "남편과 사별한 후 10년째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베테랑'"이라고 소개했다.
출·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 등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주변에서는 김씨처럼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중년 여성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배포하는 전단지 종류만 해도 일반 음식점에서 볼링장, 미용실, 유흥업소 등 각양각색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일거리'…"살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
횟집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김씨는 벌써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생계가 막막해져 무작정 거리로 나섰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강남역 주변에서 우리처럼 전단지 나눠주는 여자들은 전부 남편 없이 혼자인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씨 바로 옆에서 고깃집 전단지를 배포하던 유씨는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유씨의 밝은 인상 덕분인지 그가 전달하는 전단지를 받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혹은 바삐 발걸음을 옮기느라 유씨의 손길을 뿌리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전단지를 안 받아준다고 절대로 속상해하거나 '치사하다'는 속좁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며 "그런 마음을 먹으면 이런 일은 죽었다깨어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유씨는 자녀들이 가정을 꾸려 혼자 살게 되면서 소일거리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환갑 넘어서 집에만 앉아 있으면 외롭고 우울한 생각만 들지 않겠냐"면서 "시끌벅적한 강남역에 와서 젊은 사람들 기운도 받고 돈도 벌고 운동까지 하면 일석이조 아니냐"고 웃으며 말했다.
◇"불황으로 일거리도 줄어 걱정…일자리 있다면 어디든 간다"
이들처럼 전단지를 배포하는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2시간에 평균 1만5000원 수준이며 일급 형태로 정산돼 지급된다. 언뜻 보기엔 높은 시급 덕분에 수익이 상당할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로 인해 사람들의 소비가 위축됐고, 이 때문에 전단지 아르바이트 인력을 고용하는 가게들이 줄어들었다.
유씨는 "시급을 보면 상당히 많은 돈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4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일주일 내내 일해도 손에 쥐는 건 100만원 남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가게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전단지를 돌려보지만 업주들 형편도 나은 것은 아니다"라며 "일거리를 주던 가게들이 폐업하는 것도 수차례 목격했다"고 전했다.
일거리가 줄면서 자연스레 경쟁도 치열해졌다. 유씨는 "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서울 구석구석 안 가는 곳이 없다"며 "대기업 채용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등이 열릴 때는 인천 경기도까지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 8번 출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비가 오면 넘어지고 다칠까봐 가게에서 일도 안 시켜준다"며 "여름에는 다른 때보다 수입이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안 받고 지나쳐 갈 땐 "낯뜨거워"…단속하는 구청과 갈등도 많아
유씨의 도움을 받아 강남역 부근에서 직접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체험해봤다. '그냥 종이만 나눠주면 되겠지'라는 마음과 달리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은 쉽지 않았다.
기자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다가가기도 전에 사람들이 두 팔로 전단지를 거부할 때는 얼굴마저 붉어졌다. '괜찮습니다'라고 거부의사를 밝힌 이들에게 오히려 고마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전단지 30장을 모두 배포하고 나자 4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마지막 전단지를 건네고 나니 허리마저 뻐근했다.
유씨는 기자가 건넨 전단지가 버려지자 이를 즉시 주워 담았다. 그는 버려지는 전단지로 인해 거리가 더렵혀지면 구청에 신고가 접수되고, 단속반이 들이닥칠 경우 그날 일을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는 모두 무허가 옥외광고물로 과태료 처분 대상이다. 구청의 단속에 적발됐을 때는 1장~10장 배포시 1장당 1만8000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자가 만난 이들은 모두 "꼬박 2시간 일해도 1장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겨우 내기 때문에 단속이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과태료를 낼 돈이 없어 단속반과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강남구청 도시환경국 관계자는 "생계를 위해 전단지를 배포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고 단속하기가 미안할 때도 있지만 일반 주민들은 좋게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단지를 배포하는 분들이 때로는 통행을 방해할 때도 있고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발생해 불편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전단지가 땅에 버려지면 거리가 더려워지니까 단속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후 9시에 하루 일을 끝마친 유씨는 "나는 이런 일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직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jung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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