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7개월째 식물인간 '마필관리사'…자살도 속출
26배 높은 산재발생률...아내 "살아있어줘 고마워"
열악한 처우, 살인적 노동에 사고사도 잦아
- 권혜정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2008년 3월 23일 오전 5시40분 과천경마공원. 이날은 새벽부터 내린 비로 유난히 안개가 짙고 경주로마저 질퍽거리던 날이었다.
새벽 5시부터 경주마를 훈련시키던 마필관리사 박종덕씨(48)는 짙은 안개를 뚫고 길들여지지 않아 성격이 난폭한 악벽마(惡癖馬) '하늘처럼'을 훈련시키던 중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이날 훈련은 부경경마장과의 교류경기를 앞둔 훈련이었다. 경마장 사이의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 새벽부터 시작된 훈련에서 박씨는 '하늘처럼'을 맡게 됐고 결국 낙마했다.
경주로 1, 2코너 사이에서 낙마한 박씨는 10여m를 기어 경주로를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짙은 안개 탓에 목격자는 없었고 자세한 사고 경위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시 경주로 주변에서 발견된 박씨의 헬멧 한 켠에는 말 뒷굽에 차인 듯 움푹 패인 상처가 있었다. 박씨는 인근 병원으로 즉시 이송됐지만 이후 박씨의 시간은 5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멈춰 있다.
지난 24일 유난히 가을 추위가 매섭던 날 박씨가 입원해 있는 경기도 안양의 한 병원에서 박씨의 부인 이경주씨(46)를 만났다.
이씨는 5년7개월 전 사고 당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이 사고를 크게 당했다"는 전화를 받고 눈 앞이 깜깜해졌다고 했다.
병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니 남편의 머리는 잔뜩 부어 있었고 의사는 남편의 병명에 대해 '뇌지주막하출혈'이라고 설명했다.
뇌압이 치솟아 수술조차 할 수 없어 6시간 동안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수술에 들어갔고 박씨는 양쪽 두개골을 모두 제거해야 했다. 길고 긴 수술을 마친 뒤, 박씨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양쪽 머리는 두개골이 없는 탓에 푹 들어갔고 눈 조차 뜨지 못했다. 50일이 지난 후에야 의식을 되찾았지만 그날 이후로 박씨는 식물인간이 돼 버렸다.
5년7개월 전 초등학생이던 큰 아들은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돼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린 두 딸 역시 훌쩍 자라 엄마의 친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날 만난 박씨의 부인 이경주씨는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이었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매일 오후 과천에서 안양까지 오가는 세월을 5년 넘게 버티고 있기에 더욱 그러한듯 했다.
이씨는 "여름이면 오전 4시, 겨울이면 오전 5시. 항상 칼같이 출근하던 남편에게 그런 사고가 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며 "몸으로 하는 일이기에 항상 걱정은 됐으나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담담한 듯 말하는 그였으나 사고가 나고 한 달 동안은 어린 자녀 3명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고 했다.
마필관리사로서 박씨가 당한 사고는 박씨 개인에게만 찾아온 불행이 아니다.
마필관리사 중 사고 후유증으로 긴 세월을 투병하고 있는 사람은 박종덕씨가 처음이지만 이 바닥에서 업무중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일반 업종의 수십배에 달한다.
박씨가 몸 담았던 서울경마장 마필관리사들의 산업재해율은 평균 산재율 0.52%의 26배에 달한다. 2011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다발 등 공표 대상 사업장 명단'에 따르면 단일 사업장으로는 전국 1위다.
부인 이씨는 "마필관리사는 정말 위험한 직업이다"며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다 병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마필관리사는 조교사, 기수 또는 교관을 보조하여 경주용 또는 승마용 말을 사육·관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마방을 관리하고 마필을 급식 및 급수하며 마사지역 내에서 말을 운동, 훈련시키기는 등 실제적으로 말의 모든 것을 관리 한다.
말이 경마장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가까이 만나는 사람이 마필관리사이기에 업무강도 역시 매우 높다. 이에 따라 마필관리사의 자살과 사고 등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2011년 11월에는 부경경마장의 박용석 마필관리사가 마필관리사의 열악한 처우와 높은 산재률 등을 비난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또 같은 해 3월에는 제주경마장에서 갓 경마장에 입사한 말이 돌진해 반홍환 마필관리사가 마신봉과 말 사이에 몸이 끼어 숨지기도 했다.
'블루오션'으로 불리우며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마필관리사 월급은 호봉제로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이씨 역시 "'마이너스 통장'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사고 후 마필관리사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는 이씨지만 가끔 방송 등을 통해 마필관리사를 접하면 "(사고 등이)남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의 사고가 산재 처리가 되면서 현재 이씨는 박씨의 연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산재 처리가 되는 분야 역시 제한적이라 매달 이씨가 부담해야 하는 병원비만 100만원에 이른다.
이씨는 "앞으로가 불안하다"며 "남편이 앞으로 10년을 더 살지, 언제까지 내 옆에 있어줄지도 알 수 없고, 아이들이 점차 크면서 교육비 등이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사측은 이씨에게 합의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는 "합의금은 필요 없으니 내 남편을 원래대로 돌려 놓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떼를 써봤자 아무런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5년 7개월이란 긴 세월, 묻어놓고 살아야지"라고 말 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며 "남편이 누워있지만 살아있어줘서 고맙다"며 긴 인터뷰 동안 처음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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