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타버린 급식소 "다가올 겨울준비 어떻게…"
화재로 거처 잃은 '지구촌사랑나눔' 이주민들
복구 속도 내고 있지만 겨울 앞두고 '막막'
- 박현우 기자
(서울=뉴스1) 박현우 기자 = 지난 8일 오후 화재가 발생해 건물 1층의 무료 급식소 내부가 시커멓게 타버린 '지구촌사랑나눔'을 10일 오후에 찾았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이주민 노동자 복지 시설 '지구촌사랑나눔'은 1992년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상담과 쉼터·급식소 운영을 시작으로 2000년 현재 위치로 옮긴 뒤 현재까지 150만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의 인권신장과 복지를 위해 일하는 비정부 국제조직(NGO)이다.
시설 이용자들의 숙소 격인 이 시설의 '쉼터'에는 특별한 거처가 없이 어려운 생활을 하거나 방문취업비자를 받기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중국 교포들, 한국에 왔다가 다쳐 거동이 불편한 교포 등 50여명의 이주민 노동자가 머무르고 있다.
쉼터 이용자로 보이는 한 남성은 복구작업을 하는 한전 직원들 사이로 입구 쪽 계단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간히 건물 안에서 물건들을 꺼내 오는 일 등 소일거리를 돕는 남성에게 지금은 어디서 묵고 있냐고 물었더니 "옆 건물 3층으로 가보라"고 했다.
남성의 안내를 따라 간 곳에는 '한국외국인력 지원센터'가 있었다.
3층에 들어서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맨 바닥에 깐 매트 위에 몸을 누이고 쉬고 있었다.
센터 관계자는 "평소 한국외국인력 지원센터에서 카페로 쓰기 위해 마련해 놓은 공간을 임시 쉼터로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급하게 공간을 만드느라 쌓아놓은 의자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태권도 체육관으로 쓰던 옆방에서도 운동할 때 쓰는 매트를 깔개 삼아 쉼터 이용자들이 피곤한 듯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건물에서 나와 이원재 지구촌사랑나눔 후원팀장 안내로 다시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탄 냄새가 훨씬 심했다. 잠시 있었는데도 현기증이 났다. 모든 벽면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천장으로 지나는 플라스틱 수도관은 모두 녹아 있었다.
"일단은 전기 복구작업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수도관 교체 작업을 해야겠죠. 전기야 이르면 오늘 내일 안에 다시 복구가 되겠지만 보셨다시피 수도관은 다 녹아내려서... 다시 들어와서 생활하려면 전기와 수도가 필수적인데 말이죠"
이 팀장은 시설에 이용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겨울을 앞두고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깝다고 했다.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때라 여러모로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이 팀장은 "1층뿐만 아니라 나머지 층 분진 제거 작업도 해야돼 언제 다시 쉼터에 이용자들이 입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제 곧 무료급식을 위한 김장도 시작해야 되고 급식소 사업을 위한 후원자 연결도 해야할 시기인데"라며 한숨 쉬었다.
농번기가 지나거나 건설노동자 수요가 줄어드는 겨울철, 시설에는 최고 200여명의 이용자가 몰린다고 한다.
임시 숙소가 있는 옆 건물 1층에서 만난 중국 교포 최모씨(32)는 "빨리 쉼터가 복구 돼 쉼터 식구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에 머문지 3년 정도 된 최씨는 신학교에 다니며 시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머무는 시설에 불이 난 만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이 분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많이 놀라셨을 쉼터 이용자들을 위해서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쉼터 이용자 이모씨(62)는 "하루 아침에 옆 건물로 옮겨와 매트를 깔고 지내고 있는데 놀라긴 했지만 지낼만은 하다"며 "나는 괜찮은데 벌써부터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 어르신들이 추울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급식소에서의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하며 쉼터 '식구'들과 다시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털어놨다.
"닭을 이래이래 해서 만든 그 뭐지... 그래 닭도리탕. 그게 우리 급식소에서 가끔 나왔는데 그렇게 맛이 좋았다구. 빨리 식당이 고쳐져서 쉼터 식구들이랑 닭도리탕에 따뜻한 밥 한끼 먹었으면 좋겠수."
hw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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