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예산서 만든 광역지자체 9곳…배출사업 재검증 절차는 '0'

기후재정포럼 "울산·세종·경북엔 탄소중립 조례 미제정"

9·19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 선포식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8.19 ⓒ 뉴스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광역지방자치단체 9곳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에서 중앙정부보다 넓은 분석 체계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만 예산서에 담는 반면, 일부 지자체는 배출을 늘리는 사업과 온실가스 영향이 적은 사업까지 함께 분류했다. 다만 배출 사업을 다음 연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다시 검증해 줄이는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후재정포럼은 9일 이 같은 내용의 '지방정부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포럼은 이로움재단과 녹색전환연구소가 함께 운영하는 기후재정 논의체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는 개별 예산사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과 집행에 반영하도록 한 제도다. 전기차 보급이나 대중교통 지원처럼 감축에 기여하는 사업과 도로·주차장 건설처럼 배출을 유발하는 사업을 구분해 예산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에 이 제도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다만 지방정부는 자체 조례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2025년 회계연도 기준 17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예산서를 작성한 곳은 10곳이었다. 대구·대전·울산·세종·강원·충남·경북 등 7곳은 예산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이 중 울산·세종·경북은 관련 조례도 제정하지 않은 상태다.

포럼은 이 가운데 서울·부산·인천·광주·경기·경남·전남·전북·제주 등 9곳의 운영 방식을 비교했다. 보고서는 지자체들이 같은 제도 이름을 쓰고 있지만, 분석 범위와 분류 방식, 정책적 활용 수준은 제각각이라고 봤다.

중앙정부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업만 예산서에 담고, 배출을 늘리는 사업이나 감축·배출 효과가 섞인 사업은 별도로 분류하지 않는다. 반면 서울·경기·경남·광주·전남 등은 감축사업뿐 아니라 배출사업과 중립사업까지 함께 구분했다. 경남과 제주는 사업 전체가 아니라 사업안의 세부 항목까지 나눠 분석해 가장 촘촘한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부산은 행정운영경비 등을 제외한 사실상 전체 예산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했다. 총괄표와 정량화 지표도 서울·경기보다 정교한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실제 정책 판단 대상이 되는 감축·배출사업은 사업 수 기준 5.0%, 예산액 기준 6.3%에 그쳤고, 나머지는 온실가스와 무관한 중립사업으로 분류됐다.

인천은 예산 전체를 다시 분류하지 않고 감축에 기여하는 사업을 선별해 목록화했다. 행정 부담을 줄이고 실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도로·건설 등 구조적으로 배출을 유발하는 예산은 분석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이 포럼은 제도 운용 자체는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감축사업과 배출 사업을 분류·표시하고, 감축량 정량화와 탄소중립 기본계획 연계를 시도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결과가 다음 연도 예산에서 감축사업 확대나 배출사업 축소로 구조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봤다.

실제 분석 대상 9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배출사업으로 분류된 사업이 다음 연도 예산 심의에서 배출 요인 감소나 대체 설계 여부를 다시 검증받는 절차를 둔 곳은 없었다. 경기도만 감축예산 비중을 전년 대비 121.6% 늘리고 배출예산을 23.5% 줄이는 방향 전환을 보였다. 다만 보고서는 이 역시 효과적인 환류로 보기에는 강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포럼은 제도가 사후 설명 문서나 행정 관리 문서에 머물지 않으려면 법적 지위 확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 지방정부 예산서는 법적 근거 없이 지자체 조례에 의존하고 있어 작성 여부와 시기, 범위, 공개 여부가 모두 지자체 재량에 맡겨져 있다.

보고서는 개선 과제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작성의 법적 의무화, 예산·결산 체계와의 연계, 예산서 공개 의무화, 분석 대상 전면 확대, 탄소중립 기본계획과 재정투자 간 연계 강화를 제시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완성도 높은 예산서'가 아니다"라며 "그 목표는 해마다 예산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배출사업의 총량이 줄고 감축사업의 비중과 효과가 늘어나는 변화가 반복적으로 확인될 때만 이 제도는 실질적인 기후재정 통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고 했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