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간 스페인도 '폭염'…'게르니카' 품은 미술관엔 소파 놨다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역대급 폭염'에 정원·회랑 무료 개방…공연·영화도 제공
서울도 도서관 223곳서 운영…韓도 미술관·공연장으로 넓힐까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기후쉼터'인 국립 레이나소피아미술관 사바티니관 회랑에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마드리드 예술원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후반 25분, 축구선수 이강인은 페널티지역 오른쪽 바깥에서 왼발로 공을 감아 찼다. 공은 말라가 골문 왼쪽 위로 빨려 들어갔다. 8월 20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라리가 개막전이었다.

이강인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스페인으로 갔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한국 축구 팬들의 시선이 스페인으로 이동했다.

이강인이 뛰는 마드리드는 올여름 지독한 폭염을 앓았다. 스페인기상청(AEMET)에 따르면 7월 스페인 본토 평균기온은 25.7도로 1991~2020년 평균보다 2.6도 높았다. 1961년 관측 이래 2022년 7월과 함께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가장 더운 달이었다. 강수량은 평년의 26%에 그쳐 관측 이래 가장 건조한 7월로 기록됐다.

이 때문에 마드리드에는 올여름 곳곳에 의자가 설치됐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게르니카'를 소장한 국립 레이나소피아미술관 사바티니관 회랑에도 소파와 안락의자가 놓였다. 작품 감상용 벤치가 아니라 더위를 피해 머물 수 있는 '기후쉼터'로서의 가구다.

사바티니관은 18세기 마드리드의 병원들을 한곳에 모으려고 지은 건물이었다. 병원은 1969년 문을 닫았고 건물은 철거 위기를 넘긴 뒤 미술관이 됐다. 치료를 위해 세운 건물의 정원과 회랑이 2026년에는 폭염을 피하는 공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미술관이니 입장료가 있거나 출입 제한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으나, 7월 2일부터 9월 2일까지 사바티니관 정원과 회랑의 일부(F통로)는 조건 없이 열렸다. 매표소에서 정원 입장권을 받아 정원과 쉼터 구역에 들어갈 수 있다. 휠체어 접근 경로도 있다. 기후쉼터는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쉼터에는 공연과 영화, 어린이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일부는 유료로 진행됐으나, 플라멩코 공연이 무더위로 인한 스트레스를 씻었고 정원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레이나소피아미술관이 전향적으로 공간을 연 데는 마드리드의 부족한 녹지 상황이 영향을 미친 걸로 보인다. 2018년 녹색기반시설 계획 기준 마드리드의 공원·녹지는 동네 면적의 4.4%, 주민 1인당 1.01㎡였다. 나무 수관 면적은 1인당 0.23㎡였다.

MDPI에 게재된 '유럽 26개 도시의 녹지 공간 불평등 현황 지도화'(Mapping Green Space Inequalities in 26 European Cities) 연구에 따르면 유럽 26개 수도 내 1인당 도시녹지가 평균 15.1㎡였고, 낮은 편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도 2.8㎡, 포르투갈 리스본은 3.5㎡, 그리스 아테네는 3.6㎡였다. 조사 범위와 녹지의 정의가 달라 수치를 그대로 견줄 수는 없지만, 마드리드의 그것은 유럽 다른 도시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폭염은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스페인 보건부는 2025년 여름 초과 고온과 관련해 3832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약 96%가 65세 이상이었다. 더위를 피할 공간은 취향이 아니라 생명과 연결된 기반 시설인 셈이다.

레이나소피아미술관의 실험이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냉방 기술을 도입해서가 아니다. 미술관의 정원과 회랑을 무료로 열고 소파를 놓은 뒤 영화와 공연, 어린이 프로그램을 더했다. 더위를 피하러 온 시민이 빈방에서 시간만 보내지 않도록 예술을 함께 마련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노인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나 할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쉼터 이용을 막는다고 분석했다. 도서관이나 커뮤니티센터처럼 방문할 이유가 따로 있는 공간에는 더 다양한 사람이 찾아올 수 있다고 봤다. 영화와 공연을 결합한 레이나소피아미술관의 쉼터가 눈에 띄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긴 하다. 서울시는 7~8월 공공도서관 223곳에서 '도서관은 쿨하다'를 운영하고 독서문화 프로그램 1665개를 마련했다. 냉방시설에 의자를 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책과 문화가 있는 쉼터로 넓혔다.

미술관에 걸린 '게르니카'는 내전의 참상을 그렸다. 그러나 처절한 모습은 무더위에 스러지는 기후취약계층의 모습과도 닮았다. 이를 품은 미술관은 기후위기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작품을 보여주는 데서 나아가 시민이 더위를 피하며 머물 자리를 내줬다.

올여름 무더위가 끝물을 향해 가며 한낮 최고 42.5도의 '역대급 폭염'도 잊히는 듯하지만, 극단적인 더위는 내년에도 돌아온다. 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장도 정원과 회랑을 열고 예술을 곁들인 쉼터가 될 수 있다. 무더위쉼터는 가까워야 하고, 시민이 찾아가고 싶은 곳이어도 좋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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