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왕자 미술관부터 왕세녀 기후 메시지까지…스웨덴 왕가와 환경 [황덕현의 기후 한 편]

'차기 여왕' 빅토리아, 李대통령 공약 '에너지 고속도로' 강조
자연·생태보전 강조해온 19세기 에우옌 왕자 행동 맞닿아

편집자주 ...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에우옌 스웨덴 왕자가 거주하며 작업실로 쓴 발데마르스우데(schwedentipps) ⓒ 뉴스1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유르고르덴섬에는 왕가와 예술, 자연이 만나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국왕 오스카르 2세의 아들이자 화가였던 네르케 공작 에우옌 왕자가 19세기에 거주하며 작업실로 쓴 발데마르스우데(Valdemarsudde)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개방돼 에우옌 왕자가 남긴 작품과 수집품을 바탕으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라크스타드 예술공동체'(Rackstadkolonin) 전시가 열리고 있다.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스웨덴 서부 아르비카 지역에서 활동한 예술가 집단을 조명했다. 19세기 말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하던 시기를 거치며 변하는 자연, 이에 따라 대두되는 생태·환경의 중요성을 그림과 수공예 등으로 담아낸 게 특징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했던 실험은 오늘날 기후위기 시대에 의미 있게 느껴진다.

에우옌 왕자는 화가이자 수집가였을 뿐 아니라 정원 설계에도 깊은 애정을 쏟았다. 발데마르스우데 주변 정원은 그가 직접 구상한 것으로, 자연경관과 예술 공간을 결합한 사례로 꼽힌다. 왕족 신분이면서도 자연과 예술을 삶의 중심에 둔 그의 시선 역시 기후·환경 담론과 연결된다.

스웨덴 왕가의 환경적 관심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왕위 계승 서열 1순위로, 차기 여왕으로 확정적인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왕세녀는 한국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김민석 국무총리 등과 연이어 만나며 ABCDE(AI·바이오·문화콘텐츠·방산·에너지) 신산업 전략을 공유했다. 빅토리아 왕세녀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친선 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특히 스웨덴의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 경험을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 '에너지 고속도로'와 연결시킨 게 인상적인 대목이다. 스위스·스웨덴 합작 글로벌 기술기업 아세아 브라운 보베리(ABB)가 지난 2020년 인수한 히타치 에너지의 핵심 기술인 HVDC와 기후에너지환경부 산하 한국전력(한전)이 추진 중인 DC와 연관이 깊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16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스웨덴 지속가능 파트너십 서밋'에 참석해 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 다니엘 왕자 등 주요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16/뉴스1

빅토리아 왕세녀는 "한국과 스웨덴은 각각 2050년, 2045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세웠다"며 "녹색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국가와 경제, 사회,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웨덴 국립연구원과 한국기술평가원이 반도체와 해양기술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며 구체적 협력 사례를 언급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에너지 고속도로'와 맞물려 국제 협력의 실질적 계기로 평가된다.

정치 권한이 없는 입헌군주국의 왕실이지만, 스웨덴 왕가는 예술과 기후·환경 문제에서 도덕적·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에우옌 왕자의 미술관과 빅토리아 왕세녀의 발언은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왕가가 환경을 주제로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해 온 흐름을 보여준다.

황덕현 경제부 기후환경전문기자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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