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 도시의 재생에너지 청정전환 실험…韓 지방소멸 해법 될까 [기후전환 최전선, 지금 영국은]

(리버풀=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마크 놀스 리버풀 광역지방자치단체 저탄소정책국장(Head of Low Carbon)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버보 뱅크 해상풍력 발전소가 보이는 리버풀 해안에서 이같이 말했다. 리버풀 광역지자체는 리버풀과 주변 5개 지역을 포괄하는 지방정부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이날 해안 풍속은 시속 42㎞에 달했다. 그는 "리버풀은 영국 전역을 가로지르는 80%의 서풍을 정면으로 맞는 지형"이라며 "해저 기반이 단단하고 경사가 급해 고정식 풍력 구조물 설치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놀스 국장 말대로 눈앞 갯벌에 끝없이 펼쳐진 '바람개비'(해상풍력)는 쉼 없이 돌면서 전력을 생산했다.

비틀스와 산업혁명기의 대표적 해양무역 도시로 알려진 리버풀은 최근 발 빠르게 산업 구조를 재편 중이다. 석탄과 가스를 채굴하던 곳에서 재생에너지와 탄소 포집·저장(CCS)의 영국 내 전초기지로 전환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해상풍력 단지와 영국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기반으로, 소멸 위기에 내몰렸던 지역 제조업 중소도시가 새로 활력을 띄는 것이다.

버보 뱅크(Burbo Bank)는 2007년 3.6㎿급 대형 해상풍력터빈을 도입해 시험 가동한 단지다. 총 25기 규모로 약 6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후 2017년 확장된 버보 뱅크 확장단지에는 세계 최초의 8㎿ 터빈이 도입됐고, 전체 발전용량은 258㎿로 증가했다. 인근에선 아웰모어(1GW), 모건(800㎿), 모나(800㎿), 바이킹(부유식 해상풍력) 등 후속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들 전체 용량은 3.6GW로, 이는 리버풀 도시 전체 소비 전력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같은 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민간 부문을 활용한 영국정부의 사업 구조도 한몫했다. 초기에는 정부 차원에서 시범사업으로 버보 뱅크를 추진했지만, 이후 영국 왕실자산관리청이 해상풍력 권리를 보유하며 민간에 임대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에너지 생산지로서의 기능을 넘어, 해안은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조망권 침해 등을 우려해 '일몰을 지켜주세요'(SOS·Save Our Sunset) 캠페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해상풍력단지가 리버풀 3대 관광자원(비틀스·리버풀FC·풍력해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버풀은 지역 내 화석연료 생산 거점을 탄소 저장지로 바꾸며 산업 전환 기회로 삼은 것도 주효했다. 인근엔 과거 가스전에서 사용되던 해저 파이프라인과 폐가스전이 다수 존재하는데, 리버풀은 이 공간을 이산화탄소 저장 사업(CCS)인 '하이넷'(HyNet)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매년 10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이송·저장할 계획인데, 한국산업은행도 약 2800억원을 대출 지원해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버풀 지역 교통 시스템도 전환 흐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데이비드 파월 리버풀광역지자체 교통국장은 "리버풀은 영국 중앙정부보다 15년 빠른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며 "철도 노선을 통합하고,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는 등 다각도 전환계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저탄소 교통이 에너지 전환을 막는 병목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강과 바다 사이 조수간만의 차가 큰 머지강에선 조력발전도 계획 중이다. 머지강은 조수간만 차가 최대 10m에 이르러 발전 효율이 뛰어날 것이라는 게 리버풀 측 설명이다. 공학박사인 숀 벤존 사업 총괄은 "조력발전은 하루 중 발전 시점을 예측할 수 있어 기저발전으로의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했다. 리버풀은 이 사업으로 최대 1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머지강 조력발전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영국 당국과 지식공유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수공은 세계 최대 규모 시화호 조력발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리버풀의 친환경 전환은 중앙정부 지원으로 가능했다. 이 때문에 영국 내 다른 도시에서는 "녹색전환 재원이 리버풀에 집중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 산업전환 간 녹색 일자리가 실제로 지역 청년에게 얼마나 돌아가는지도 지속적으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아울러 조력발전의 경우 유속 변화로 인해 퇴적물 침전과 생태계 변화, 바닥이 깎이는 세굴 현상 등의 우려도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넥스트의 '해상 풍력발전 프로그램' 지원을 받았습니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