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운동 둘 다 잡는다…학교 야구부 살린 비결 [기고]

[고교학점제 논란]①권혁선 한국기술부사관고 수석교사
'체육 중점 학교' 운영을 통해서 본 '고교학점제'의 모습

편집자주 ...시행 반년이 지났는데도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무엇을 살리고, 바꿔야 할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뉴스1은 고교학점제에 관한 실천과 연구 경험을 가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연속 기고를 마련했다. 3명의 전문가가 현장 경험과 쟁점, 앞으로의 방향을 살펴본다.

권혁선 한국기술부사관고등학교 수석교사

벌써 5년이 지났다. 퇴직을 앞둔 두 분의 체육과 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야기하신다. 학교 야구부를 살리고 싶은데 쉽지 않단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체육 중점 학교'를 제안했다. 체육과 자체로 추진하기 어려우니 수석 교사가 앞장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체육 중점 학교는 운동선수나 체육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을 선발해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체육 중점 교육과정 편성·운영은 곧바로 이뤄지지 못했다. 교사는 물론 학생의 많은 반대가 있었다. 실제 교육과정 운영은 2023년에서야 이뤄졌다.

반대 이유는 현재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어려움과 마찬가지로 내신 성적 산출 문제였다. 운동부 학생을 위해 별도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면 그만큼 일반학생의 내신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쉽게 극복하기 힘든 난제다.

실제 고교학점제를 다룬 최근 MBC 'PD수첩' 보도를 보면 서울지역 200여개 학교 가운데 '기본수학'을 편성한 학교가 하나도 없었다. 기초학력진단평가 결과 서울에 수학과목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다. 서울에도 운동부 운영 학교가 분명히 있는데도 '기본수학'과 '기본영어'를 개설한 학교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체육 중점 학교를 추진할 수 있었다.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서울 한 고등학교 수업 모습. (뉴스1DB) ⓒ News1 신웅수 기자

요즘 논란이 많은 고교학점제도 따지고 보면 체육특기자와 같은 학생을 위한 배려로 만든 제도다. 운동선수와 같이 자신의 진로에 대한 의지가 강한 친구는 거의 없다. 그런데 '최소성취수준 보장 지도' 때문에 학점제를 반대한다는 체육계의 반응을 보면서 학점제에 대한 오해나 인식 부족을 느낄 수 있다.

체육계는 운동선수들이 학업과 훈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체육 중점 교육과정 편성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면 운동선수의 성취수준에 맞는 학습과 평가로 이들이 학점을 이수 못 하는 상황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운동부 운영 학교는 학생의 수준과 학력을 고려해 1학년 교육과정에 난도가 낮은 수준의 '기본수학'과 '기본영어'를 편성해야 한다. 1학년 과정을 이수하면 2학년에는 선택 교육과정으로 체육 전공선택 과목을 편성해 운영할 수 있다. 오전에 일반선택 과목을 편성하고 오후에는 체육 실기 과목을 편성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체육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계열 진로희망 학생에게도 오후에 3~4학점 과목 2개 정도 편성하면 적성과 진로에 전혀 상관없는 교육과정으로 갈등하는 사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학교는 이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왜 예체능 학생들은 교육에서 소외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 모습. (한국일보 제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체육 중점과정이 운영되면서 학생들은 본인이 희망하는 교육과정을 선택하게 됐다. 오후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스포츠 과목을 수강하고 정정당당하게 운동하게 됐다. 학교 내신의 도움도 받게 됐다. 학생은 대학이나 프로팀의 지명을 희망하지만, 상대적으로 운동 기능이 좋지 못한 학생은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일부 학생은 운동과 함께 학업을 통해 관련 대학 진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친구가 많으면 팀 전체 플레이가 엉망이 될 수 있다. 스포츠 경기는 우수 선수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하나 된 팀워크도 매우 중요하다. 체육 중점 과정의 운영은 굉장히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각종 국내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프로 지명을 받는 선수도 놀랄 정도로 증가했다.

체육 중점과 같은 교육과정 운영은 체육 분야만 아니라 음악·미술 예능 분야에도 확대돼야 한다. 예능 분야 학생에게도 진로 희망 분야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처럼 학점제는 이러한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전면적인 성취평가제를 하면 내신의 유불리가 아니라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취평가와 함께 5등급 내신 성적을 병기하는 정책이 채택되면서 일반 학교에서 이러한 교과목을 쉽게 개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고교학점제에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고, 다양한 학생들을 배려한 다채로운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가 바르게 정착돼 보다 많은 친구가 '꿈'과 '끼'를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jin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