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칼럼]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궁극적 성공 모습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지역대 몰락을 막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내세운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실천이 기존 고등교육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나라 대학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역대 붕괴는 지역 경제 쇠락, 인구 유출 가속화, 지역 문화 단절 등과 맞물려 있기에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사립대는 주인이 있어 국가가 관여할 수 있는 폭이 좁으니, 국립대를 중심으로 지역대 몰락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세계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발표한 2025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우리나라 지역 국립대는 단 한 곳도 10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 대한민국에 서울대급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지역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니 이는 분명 문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여론의 주목을 더 받는 까닭이다.

'서울대급 대학' 하나만 있는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은 없어

하지만 이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몇 가지 선결 조건과 그 성공 모습을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지역대 9개를 지정해 국가 재정을 파격적으로 늘린다고 해 이 정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재정 투입 위주의 지역대 살리기는 이미 적잖이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따라서 이번 공약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려면 이전과 크게 달라야 한다.

첫째, 지역대를 그저 '지역거점' 대학이 아닌 '국가 중추 대학'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갖춘 나라 중에 서울대급 국가중추대학이 하나만 있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중장기적 시일이 필요한 정책이다. 따라서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20~30년의 중장기적 전망을 갖고 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여야 정치권의 합의와 대국민 약속, 시민사회의 일관된 협조가 필요하다.

셋째, 부·울·경과 대구·경북, 광주·전남, 전주·전북, 세종·대전의 통합이 성사돼 대단위 행정구역이 출현해야 한다. 신장한 한국의 국력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국가의 균형 발전을 일궈내기 위해서, 또한 인공지능(AI) 시대를 온전히 이끌기 위해서는 서울대급 국가중추대학이 지역에 5곳 정도는 필요한데, 대단위 행정구역이 있을 때 그 시너지가 가성비 높게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 국립대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학부와 대학원의 등록금 폐지, 학생기숙사 건립과 무상 제공, 탁월한 교수 자원의 획기적 증원, 지자체와 대기업의 지역 인재 우선선발 제도 확대 개편 등 파격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역할에 대한 근본적 인식 전환이다. 세계 대학은 지금 근본부터 변하고 있다. AI의 혁명적 발전으로 대학이 AI 생태계에 편입되고 있다.

미국 미네르바대학은 학생들이 세계 도시를 순회하며 AI 기반 학습 플랫폼을 활용해 비판적 사고와 토론 중심의 교육을 받게 하고 있다. 미국 혁신 대학 1위 애리조나주립대는 AI 기반 맞춤형 학습 시스템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버드대와 MIT 등은 OpenAI와 함께 'NextGenAI' 컨소시엄을 결성해 학생 교육에 나서고 있다.

지식플랫폼 네트워크로 서울대와 '지역 서울대' 경쟁력 확보

이러한 대학의 혁신 흐름에 우리나라 대학은 한 발 더 앞서야 하고, 서울대는 이를 선도해야 한다. 글로벌 최고 대학이 아닌 서울대를 '지역 서울대'들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는 2025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전년 대비 7단계 하락한 38위에 그쳤다. 글로벌 최고 대학은 고사하고 국내 위상과 비중도 하락했다. 법인화한 지 13년이 지났음에도 국립대 시절보다 재정의 정부 예속이 심화했고 자율성은 위축됐다. 서울대가 가장 먼저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지역 국립대들이 서울대를 모델로 '지역 서울대'를 만들 수 있다.

서울대는 새로운 문명 조건에 맞게 대학 역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수월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글로벌 중추 대학'의 위상과 역량을 지녀야 한다. 서울대가 영어권 위주 평가지표에 의한 기존 대학 평가 시스템 안에서는, 그리고 세계 유수 대학 대비 열악한 재정 상황과 교수 급여 수준 등으로는 글로벌 최고 대학으로 도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서울대가 글로벌 최고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서울대는 디지털 대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도 보유하고 있다. 이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글로벌 지식플랫폼' 대학의 실현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대학과 대학, 연구기관과 연구기관, 대학과 국내외 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스마트 휴먼그리드의 허브가 돼 세계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 경로의 핵심 교차로가 되고, 책임감 있는 세계시민 양성의 중심축이 되는 비전을 세우고 이를 추구해야 한다.

글로벌 지식플랫폼 대학으로의 서울대 '역할 영토'의 변환을 지역 국가중추대학들이 공유해 서울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사상 초유의 혁신적 고등교육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신문명 기반 생태계 안에서 지역 국가중추대학은 해당 지역 내 독자적 지식플랫폼 대학으로서 이웃 대학, 연구기관, 산업체, 지자체, 지역사회 등과 또 다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결국 서울대와 지역 국가중추대학 그리고 그 이웃 대학들이 촘촘히 연결된 거대한 고등교육 네트워크를 형성해 하나의 '네트워크 기반 집체 대학'으로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궁극적 성공 모습이다. 그러했을 때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대한민국의 교육 지형을 근본부터 바꾸는 위대한 국가적 도전으로 평가될 것이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