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칼럼] '서울대 10개 만들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관한 논의가 제법 뜨겁게 벌어진다. 현직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 그럴 수 있고, 직간접적 이해 당사자가 워낙 많은 사안이라 더욱 관심이 집중되는 듯하다. 시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교육 영역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일이니, 이번 기회에 치열하게 토론해서 생산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동안 국가 전체가 나아갈 방향과 성장 동력을 잃고 우왕좌왕했던 까닭에 모처럼 제기된 국가 성장과 균형 발전의 의제를 반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계획이 시행되면 혜택을 보리라 예견되는 영역, 특히 지역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측면으로 걱정하는 말들도 많이 들린다. 국가 대사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게 능사가 아니고, 이런 일에는 무엇보다 전 사회적 합의와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니 걱정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관해 가장 많이 들리는 걱정은 실현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그 많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냐는 걱정은 가볍게 들을 수 없는 현실적 문제다. 설령 재원을 어찌어찌 마련해 지원한다고 해도, 이미 한국에서 가장 많이 지원받는 서울대조차 글로벌 최고 수준에 못 미치는데 지역 국립대들이 그런 수준으로 따라올 수 있겠냐는 걱정도 있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계획에 자원을 분산하지 말고 서울대 하나라도 제대로 육성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런 발상이 너무 엘리트 중심 사고라고 비난받을 듯하면, 서울대는 글로벌 최고 대학들과 경쟁하도록 키우고 지역 국립대에는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역할을 나눠주자고 말을 살짝 바꾸기도 한다.
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비판하고 걱정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지역대학 위기의 해법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찾아야 하는데, 너무 정치공학적이고 행정 중심적 발상에 치우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그래서 왜 9개 국립대만 파격적으로 지원하는지, 나머지 국립대와 더 많은 수의 지역 사립대는 왜 방치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교육의 기본 가치와 국가 자원 배분의 형평성을 무시하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걱정과 비판은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다. 그래서 재삼 살피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관한 갑론을박의 견해 중에 새로운 내용은 사실상 거의 없다. 대부분 지난 시절의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들이고, 공약을 내세우고 추진을 준비 중인 이들도 그걸 모를 리는 없다. 걱정하는 바를 알지만, 지금의 이 극심한 지역 불균형과 국가 성장 토대의 붕괴를 방관할 수 없기에 사즉생의 심정으로 대안을 찾는 것이고, 그래서 이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성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지난 시절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교육체제를 혁신하고 지역의 대학을 육성하는 사업에 꽤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돈을 쏟아부을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도 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한 걱정도 어떤 면에서는 이런 아픈 경험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는 점이 하나 있다. 과거 시행착오의 원인을 찬찬히 짚어보면, 결국은 뿌리 깊은 서울·수도권 중심의 발상이 그런 실패를 피할 수 없게 만든 근본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모든 자원과 인재와 기회를 서울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다 빨아들이는데, 국가의 시스템 전체가 그걸 당연한 듯 방치하면서 지역에 선심 쓰듯이 예산 좀 던져주고 책임을 모두 전가한 게 지금까지 우리 현실이었다. 서울 수도권 대학들은 지역의 그런 현실에 눈을 감았고, 정부는 지역대학에 예산을 지원하면서 한정된 역할을 할당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해 실현 가능성을 문제 삼는 이들은 어떤 점에서는 여전히 이런 뿌리 깊은 서울 수도권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차라리 서울대나 서울 소재의 이른바 명문대에 자원을 집중해 글로벌 최고 경쟁력을 갖는 대학으로 키우자는 말은 얼핏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이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도시국가가 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전국의 인구를 서울·수도권으로 집중시킬 수 있을까. 이는 효율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공생 공존의 가치를 무시하는 발상이고, 심지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므로 효율적이지도 않다.
역설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지역과 지역대학을 살리겠다는 계획이어서는 안 된다. 누가 지역과 지역대학의 생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전형적인 서울·수도권 중심의 발상이다.
중요한 건 지역과 지역대학이 서울 수도권과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고, 정부의 역할은 그것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역과 지역대학이 어떤 역량을 육성해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지는 그런 인프라 위에서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중앙이 예산을 무기로 지역의 역할을 일일이 할당하는 건 인공지능(AI)이 사회 시스템을 뒤바꾸는 지식경제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다.
지역은 지금까지 공평한 경쟁의 기회를 얻은 적이 없다. 그런데 마침 AI가 국토의 어디에 위치하든 공평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로 등장했다.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추진하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그런 AI 인프라를 지역 거점 국립대에도 집중적으로 제공해 공평하게 경쟁할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걸로 보인다. 지역의 풍부한 전력 자원과 AI 인프라 그리고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적 인프라까지 결합한다면, 그나마 서울 수도권과 엇비슷하게 경쟁을 해볼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라고 해서 10개라는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5개든 3개든 일단 성공한 모델이나 적어도 가능성이 보이는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걱정이나 불신이 기대로 바뀐다.
지역과 지역대학은 살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원하는 건 공평한 기회이고, 그걸 가능케 하는 인프라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서울·수도권 중심의 이기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국민 모두 한마음으로 절실하게 달려들어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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