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정치 삼류 늪에서 벗어나 기업발목 잡지 말고 민심 되찾는 데 집중해야

(서울=뉴스1)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 한국 정치를 묘사할 때 흔히 "정치는 삼류, 기업은 일류"라는 표현을 쓴다. 30년 전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중국 베이징 간담회에서 "우리 정치인은 사류, 관료 행정은 삼류, 기업은 이류 수준"이라고 평가한 말이 지금까지도 정치와 정부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아마 이 회장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최근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사태와 정치권의 이전투구를 보면 기업은 그나마 일류로 올라섰지만 정치와 행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지금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등 글로벌 기업들은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분명 일류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성장과 경제적 위상과는 달리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실망스러운 민낯만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비극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이후 여야는 미래지향적 정책 경쟁 대신 상대를 깎아내리는 소모적 대결 정치로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근 벌어진 청문회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내로남불식 인사청문회다. 정부의 연이은 인사 실패와 자질 논란은 국민에게 정치권의 퇴행적 현실을 명확히 각인시키고 있다.
일반 국민은 경제든 행정이든 정치든 최소한 상식적 수준에서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파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계산이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다. 감언이설과 표리부동, 적반하장이 판을 치는 정치라 해도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절대 예외가 될 수 없다.
국무위원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병역 회피,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자녀 국적 등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의혹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도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인사 실패는 대한민국 정치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제자 논문 표절 의혹, 자녀의 불법 유학 문제, 정책 이해 부족 논란과 함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보좌관 갑질 논란 등도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았다. 결국 지명철회와 자진사퇴로 이어진 이 사건들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를 넘어 정치권의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과 학문 윤리의 부재 등 여러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무후무한 탄핵 사태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역시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점을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사태가 촉발한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분열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국민 앞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정치는 결코 신뢰받을 수 없다.
AI 시대를 맞아 구글, 메타, 오픈AI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치열한 기술경쟁 속에서 인재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잠시라도 유능한 인재를 놓치면 단숨에 뒤처질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이들 기업은 단순히 기술적 능력뿐 아니라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일류 기업이 미래를 위한 명확한 철학과 기준을 세우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개인적 흠결과 도덕적 논란만을 부각시키는 정쟁의 장으로 전락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정치가 계속 이 같은 '형식적, 버티기 일회성 청문회'의 구태에 머문다면 한국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정치적 퇴행으로 인한 장기적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관세 압박과 같은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정치가 경제와 기업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제 정치권에도 기업의 인사 시스템처럼 객관적이고 투명한 검증 절차가 도입돼야 한다. 정치권의 인사검증은 정실 인사, 코드 인사, 이념 인사, 캠프 인사 등 후진적 관행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인사검증기구를 통해 더 철저히 개혁돼야 한다. 미국의 FBI 신원검증이나 독일의 연방 인사위원회와 같은 철저한 인사시스템이 필요하다.
경제만큼 정치도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 삼류"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극단적 대결정치를 넘어 민심 회복을 위한 근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일류 국가로 도약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har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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