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6개월' 헌재에 쏟아진 2000건…사전심사 통과 단 1%
[사법 3법 반년] ① 하루에 10건꼴 접수…20건만 정식 심리
내달 재판소원 기준 윤곽 나올 듯…대법과 갈등 불씨 여전
- 문혜원 기자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법원 확정판결도 헌법재판소 심판 대상이 될 수 있게 한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된 지 6개월이 지났다. 헌재에 2000건 이상 사건이 접수됐고 이 중 2건은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사전심사 단계에서 대다수 사건이 걸러지면서 접수된 사건 중 1% 정도만 정식 심판에 회부된 셈이다.
10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접수된 재판소원은 총 2154건이다. 단순 계산하면 하루에 10건 이상 사건이 접수된 셈이다.
지난 2월 '재판소원법'으로 불리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개정 헌법재판소법은 지난 3월 12일부터 시행됐다.
확정된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거나 △헌법·법률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헌법·법률을 명백히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재판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72조에 따라 재판소원을 포함한 헌법소원 사건은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사전 심사한다. 지정재판부는 청구가 적법하다고 판단하면 재판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재판부에 회부한다.
헌재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재판소원 사건을 심사 중이다. 이달 1일 기준 사전 심사 문턱을 넘어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은 20건에 불과하다. 지정재판부 단계에서 각하된 사건은 2004건에 달한다.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 중 심리불속행 사건과 영장 사본 미교부 사건은 변론기일이 잡혔다. 가장 먼저 변론기일이 예정된 사건은 녹십자가 청구한 재판소원으로, 다음 달 7일 변론이 진행된다.
앞서 녹십자는 HPV4가(가다실) 백신 입찰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고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고 대법원은 심리를 진행하지 않고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녹십자는 재판청구권,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다음 달 21일에는 김영수 법무법인 대륜 변호사의 재판소원 사건 변론이 열린다. 김 변호사는 2022년 7월 특검이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았다며 법원에 준항고를 제기했다. 준항고는 수사기관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취소나 변경을 요구하는 절차다.
법원은 준항고를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김 변호사가 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장 사본 교부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김 변호사는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재판청구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재판소원을 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헌재가 변론의 기회를 주는 것은 신중하게 여러 의견을 듣고 기준을 세우겠다는 의미"라면서 "헌재가 결정을 내리면서 재판소원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내내 재판소원을 둘러싸고 헌재와 법원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그 결과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문제"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수석부장판사 전보성)는 북한에서 구입한 서적과 영상자료 등을 허가 없이 국내로 반입한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항소심에서 4년째 헌재 심리가 지연돼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향후 헌재 결정에 따라 양 기관의 갈등이 비화할지, 합의점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을 지낸 김승대 변호사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법기관들의 업무 긴장도를 유지하기 위해 재판소원 제도는 필요하다"면서도 "제도가 남용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헌법 질서를 위해 꼭 판단해야겠다는 사건만 다루는 것이 사법 체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며 "우리나라 규모를 감안하면 1년에 100건 미만 정도의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헌재는 늘어난 재판소원 사건에 대비해 인력과 예산을 확대하고 공간 확충에 나섰다.
헌재 정원은 기존 364명에서 내년 404명으로 40명 늘어난다. 구체적으로 헌법연구관 20명과 일반직 20명이 충원된다.
헌법연구관 20명은 재판소원 사건 청구 기간, 청구인 적격 등 적법 요건을 살펴보는 사전 심사를 담당한다. 일반직 20명은 사건 접수와 민원 처리, 사건 배당·처리, 재판기록물 관리, 재판소원 시스템 개발·운영 등을 맡는다.
인력 증원에 따라 예산도 늘어난다. 내년도 예산 규모는 올해 621억 원에서 708억 원으로 87억 원 증가한다. 전체 인건비도 354억 원에서 408억 원으로 약 55억 원 확대된다.
헌재는 증가한 인력을 감당하기 위해 최근 새 사무실도 열었다. 지난달부터 서울 종로구 이노88타워 10층에 별관을 마련했다. 헌재는 업무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30년을 목표로 청사 내 테니스장 부지를 활용한 증축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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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범여권 주도의 사법 3법(재판소원·법왜곡죄·대법관 증원)이 처음 시행될 때 법조계에선 사법부의 독립 침해, 소송 장기화, 헌법재판소의 과부하, '코트 패킹' 등 우려가 나왔었다. 사법 3법 시행 반년을 맞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라는 법 취지에 맞게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지,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