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도 못 정하는데 20명을"…'밀실합의' 대법관 인선 절차부터 개선해야

[사법 3법 반년] ③3심 지연 해소 위해 대법관 26명까지 증원
대통령 임기 후반 갈등 더 커질수도…"민주적 제도 개선 필요"

편집자주 ...범여권 주도의 사법 3법(재판소원·법왜곡죄·대법관 증원)이 처음 시행될 때 법조계에선 사법부의 독립 침해, 소송 장기화, 헌법재판소의 과부화, '코트 패킹' 등 우려가 나왔었다. 사법 3법 시행 반 년을 맞아 국민의 기본권 보장 확대라는 법 취지에 맞게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지,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개정 법원조직법이 지난 3월12일 공포·시행되면서 2028년 3월부터 1년마다 대법관 4명, 총 3년간 12명의 대법관이 늘어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증원되는 12명에 더해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10명(대법원장 포함)까지, 임기 중 모두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이 중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은 이 대통령의 초유의 재제청 요구로 절차가 지연돼 현재 공석이 6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지난 7일 퇴임한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에는 김성수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앞으로 이 둘을 제외하고도 20명의 대법관 인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선에도 반년 넘게 진통을 겪은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20명의 대법관 인선에도 이 같은 진통이 생기면 상고심 재판 지연 해소라는 취지로 도입한 '대법관 증원법'이 결국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변호사는 "지금도 대법관 1명을 못 정하는데 20명의 대법관을 무탈하게 임명할 수 있겠냐"며 "결국 6개월 공백 사태를 초래해 상고심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법관을 늘려 상고심 지연을 막겠다는 대법관 증원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겠냐"고 토로했다.

대법원은 노태악·이흥구 대법관 퇴임으로 소부 3부 소속 대법관이 4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자, 궁여지책으로 2부 소속이던 엄상필 대법관을 3부로 이동하는 등 소부 구성을 조정했다. 대법원 소부는 최소 3명이 있어야 심리가 가능하다.

또 매달 진행하던 전원합의체 심리는 두 달 째 감감무소식이다. 이에 지난 7월과 8월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김건희 여사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내란 사건의 첫 심리도 아직 열리지 않았다.

또 이번처럼 대법원장의 서면 제청,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등 일련의 사태가 반복될 경우 결국 대통령의 일방 의사만 반영된 인물만 대법관에 임명돼, 정권이 유리한 방향으로 법원 구성을 바꾸는 이른바 '코트 패킹'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사건이 계류 중이라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이 대통령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걱정이 더 클 것"이라며 "대법관 수도 늘어나는데 대법원장의 제청 과정에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고 하면 사법부 독립에 지장을 미치는 현상이 생길 우려가 커진다"고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26.9.11 ⓒ 뉴스1 김민지 기자

법조계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관행으로 진행됐던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밀실 합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법부의 독립 및 대법관 구성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11일 페이스북에 "제청 이전에 '사전협의'는 관행이었을 수는 있어도, 헌법적 관행으로 승격될 수 없고 그 관행이 과연 바람직했는지도 의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비공개·밀실관행은 없어지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장과 대법관 선임 절차에서 유신독재의 흔적이 그대로이고, 후보추천위원회도 매우 제한적 인적 구성을 갖고 있어 문제"라며 "곧 26명의 대법관 시대를 맞이한다. 그 경우에는 더욱 '사전협의' 관행을 유지하기도 어렵고, 주요 법조인사들만의 제한적 추천절차를 유지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뉴스1과의 통화에서 "국민의 일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대법관 선발·임명 권한을 대통령과 대법원장, 이 두 사람에게만 달려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대법관 선발이 보다 공식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대법관 증원에 따른 대법원 운영방식 재정비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대법원은 3개의 소부에 각각 4명의 대법관이 배치돼 사건의 대부분을 처리하고,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원장 및 대법관 12명이 전원합의체에 참여해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 등을 처리한다.

대법원도 지난 7월 '각국의 상고심 재판부 구성' 용역을 긴급 입찰 공고했다. 대법관 증원에 맞춰 전원합의체는 어떻게 심리할 것인지, 대법원 소부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 적절한 대법원 재판부 구성 방식과 구체적 심리 방식을 해외 사례를 통해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한 고법판사는 "대법관이 26명이 되면 사실상 전원합의체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어떤 방식으로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회적 사건들을 다룰지 이젠 논의에 속도를 붙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