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적 시세조종'도 처벌…'투자자 보호' 강화하는 법원
CFD 시세조종·ABCP 부실…금융판례 흐름 살펴보니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자본시장법이 직접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은 장외파생상품을 이용한 시세조종도 처벌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최근 나왔다. 금융 상품과 투자기법이 갈수록 복잡·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거래의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며 규율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5월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 폭락' 사건의 핵심 인물 라덕연 씨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앞서 라 씨는 2019년 5월에서 2023년 4월 사이 매수·매도가를 미리 정해놓고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매매 방식으로 삼천리 등 8개 상장사 주가를 띄워 7377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쟁점은 장외 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한 시세조종을 구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 매매가 상당한 비율로 예상되는 장외 파생상품을 이용한 피고인들의 주문이 증권사 등을 거쳐 곧바로 상장증권 또는 장내 파생상품에 대한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하는 통정매매 주문으로 이어진 경우에도 시세조종 행위로 인한 구 자본시장법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시세조종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다수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증권시장 전체를 불건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개개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투자자의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를 보호해 증권 시장이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앞선 항소심이 구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행위가 금지되는 행위의 대상을 법령에 명시된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 또는 그 위탁이나 수탁을 하는 행위'로만 엄격히 해석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해당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불공정 거래 관련 형사소송을 다수 진행해 온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고지훈 변호사는 CFD 관련 대법원판결에 대해 "굉장히 전향적인 결정으로 시사점이 있다고 느꼈다"라고 평가했다.
고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 의의에 대해 "보다 투자자를 보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사건별 차이는 있겠지만 향후 수사 과정에서도 선례에 국한되지 않고 수사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사회적 파장과 본래 입법 목적, 실제 금융 생태까지 고려해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최근 잇따라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입법자가 모든 부정거래를 예측하기 어려워 생기는 '불법과 탈법의 공백'을 보다 유연한 법리 해석으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중국국적 에너지화공집단(CERCG)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실 사태와 관련해 발행 주관사가 신용평가서 결과만 신뢰할 것이 아니라 투자 대상의 위험성을 직접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건에서 문제가 된 ABCP의 기초자산은 CERCG가 지급보증한 해외 회사채였다. 부산은행은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현 LS증권)이 CERCG 계열사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발행 및 판매한 ABCP 물량 중 200억 원어치를 매입했다. 그러다 2018년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며 주관 증권사와 신용평가사 등에도 책임론이 불거졌다.
대법원은 "증권사들은 이 사건 ABCP 발행·유통자로서 이 사건의 ABCP에 부여된 신용등급이 투자에 따른 유동화자산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움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면서도 유동화자산 위험이 신용평가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신용평가사들에 정확한 정보 및 자료를 제공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판결은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발행 주관사의 책임을 묻는 법리를 처음 정립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윤지효 변호사는 "ABCP 사건은 (대법원이) 전문가 간 거래라고 하더라도 정보 비대칭 구조하에서 누가 제일 정보를 많이 가졌는지, 정보를 잘 정리해 유통해야 하는지를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한별 변호사는 "장기적 관점에서 금융기관사들이 (적극적 검증과 실사에 따른) 수수료를 올릴 가능성이 있지만 대법원의 판결 취지는 이 같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증권사들이 더 신중하고 심도 깊게 검토를 해야 한다 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판례 흐름에 맞춰 기업 및 개인 투자자도 계약 체결과 투자 과정에서 분쟁 예방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이 나온다.
윤정노 변호사는 최근 잇따르는 IPO(기업공개) 관련 풋옵션 분쟁을 예로 들며 "투자계약서에 'IPO가 무산되면 투자금을 반환한다'는 단순한 문구가 있더라도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분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은 최근 판례가 계약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반영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계약서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협의 과정과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회의록이나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는 것이 분쟁 발생 시 도움이 된다"며 "녹음이 어렵더라도 미팅 이후 회의록을 작성하고 협의 경위를 남겨두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개미 투자자들도 확인 책임이 더 커졌다.
정 변호사는 "2021년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작되면서 사실상 금융투자 상품 계약 체결 과정이 다 녹음되고 있다"며 "상품설명에 대한 부분도 다 녹취되다 보니 투자자가 '위험에 대해 설명·고지받지 못했다, 잘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을 잃는 경우가 발생한다. 꼼꼼히 살피고 판단한 다음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책임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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