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중절' 산모 항소심서 무죄…병원장·집도의 감형

2심 "사산돼 나올 거란 말 전해 들어…살해 용인 인정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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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한수현 기자 =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절 수술을 받아 집도의 등과 살인 혐의 공범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산모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용석)는 23일 살인 혐의를 받는 권 모 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병원장 윤 모 씨(80)에 대해선 징역 4년과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하고 900만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앞서 1심은 윤 씨에 대해 징역 6년과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집도의 심 씨에 대해선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권 씨 입장에서는 태아가 사산돼 나올 거란 말을 전해 들은바, (브로커를 통해) 의료진의 말을 그대로 전달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인 브로커가 윤 씨 병원 의료진에게 문의하지도 않은 채 한 발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권 씨는 수술 전 신체 배출 태아 사체 처리 동의서에 서명하긴 했으나, 이는 태아의 사체 처리를 위임한단 일반적인 내용으로 보인다"며 "살아서 태어난 태아의 사체에 대해 의료진의 살해를 용인한다는 의사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권 씨가 수술받지 못할 것을 대비해 출산 지원 절차에 대해 알아보는 행위를 했다고 확인할 자료가 제출되진 않았으나 미리 출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사정이 권 씨가 제왕절개 수술 이후 모체에서 배출 후 인위적으로 살해했다고 뒷받침할 사정이 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윤 씨와 심 씨에 대해 재판부는 "임신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 임신 상태 유지해 출산할 여부를 결정할 권리로서 헌법상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며 "윤 씨와 심 씨의 행위는 산모 권 씨의 임신 종결 의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양형에 참작하기로 했다"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윤 씨는 살인 범행이 드러나 형사 처벌이 우려되자 진료기록을 거짓으로 작성하고, 사산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해 행사했다"며 "심 씨는 수사선상 드러나지 않고 이미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의원 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지시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고 범행을 은폐하고자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브로커 한 모 씨에 대해선 징역 1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2억 1095만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함께 기소된 브로커 배 모 씨의 항소는 기각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유지했다.

병원장 윤 씨와 집도의 심 씨는 지난 2024년 6월 임신 34~36주 차인 산모 유튜버 권 씨의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한 후 태아를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윤 씨는 권 씨의 진료기록부에 건강 상태를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허위로 기재하고 태아가 사산한 것처럼 꾸몄다. 또한 수술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자 태아의 사산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했다.

검찰 조사 결과 윤 씨는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낙태 수술을 통해 수입을 얻기로 마음먹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다.

윤 씨는 2022년 8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입원실 3개와 수술실 1개를 운영하며 낙태 환자들만 입원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심 씨는 건당 수십만 원의 사례를 받고 수술을 집도했다.

윤 씨는 이 기간에 브로커들에게 환자 527명을 소개받아 총 14억 6000만 원을 취득한 혐의도 받았다. 윤 씨에게 환자를 알선한 브로커 2명도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권 씨가 '총 수술비용 900만 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하며 시작됐다. 영상을 두고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4년 7월 유튜버와 태아를 낙태한 의사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낙태죄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1심은 태아가 생존할 수 있는 시점에서 인공 배출돼 '살아 있는 사람'이 됐다며 이들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sh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