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재심 드라이브'…형사사법체계 전환 앞 李정부 '보폭 맞추기'

"실질적 정의 실현 반영 못했다"…재심 증명 청구인→검찰 적극 검토
4·3사건, 여순사건 재심도 속도…과오 청산 메시지로 신뢰 회복 집중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78)가 지난해 7월 23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7.23 ⓒ 뉴스1 장광일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공익의 대변자, 인권 보호자라는 검찰 역할에 충실하겠다."

김태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27일 과거사 재심(再審) 사건에 소극적이던 검찰의 태도를 180도 바꾸겠다며 한 말이다. '수사·기소 분리'를 축으로 한 제2 형사사법체계 전환을 앞두고 검찰이 몸을 바짝 낮추는 모습이다.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 화제가 됐던 검·경 수사권 조정 때와는 달리, 정부·여당과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檢, 적극 재심 드라이브…재심 사건 59% '무죄 구형'

김 차장검사는 이날 서울고검에서 브리핑을 통해 "검찰은 그동안 청구인의 신청에 따른 재심 사건에서 '법적 안정성' 확보에 중점을 뒀지만 '실질적 정의 실현'이라는 재심제도의 또 다른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며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한 피해자와 희생자를 낳은 과거사에 대한 재심 청구와 무죄 구형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재심(再審)은 확정된 민·형사 판결에 중대한 오류 또는 불법행위가 있을 때 그 판결의 취소와 재심리를 청구하는 비상구제절차다. 당사자나 검사가 청구하는 통상의 재심 외에도 검사가 피고인을 위해 청구하는 '직권재심', 제주 4·3사건 등 개별 특별법에 근거해 재심을 청구하는 '특별재심' 등이 있다.

검찰은 과거 불법 수사와 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했거나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명예와 재산상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재심 청구와 무죄 구형에 힘을 쏟고 있다.

서울고검과 중앙지검에 접수된 공안 관련 재심 연간 건수는 2023년 23건에서 지난해 137건, 재심 청구 사례는 23건에서 49건으로 각각 6배, 2배씩 늘었다. 검찰은 최근 3년간 접수된 청구 218건 중 91건(41.7%)에 대해 재심 개시 의견을 내고, 재심 개시 사건 107건 중 58.8%인 63건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를 구형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반대·저지했다는 이유(반혁명죄)로 징역형을 받았던 당시 육군 6군단장 고(故) 김웅수 장군 사건,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기도 대공분실장의 1987년 불법 수사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당시 불법 구금·구속을 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1~2월 법원에 재심 개시 의견을 냈다.

김태훈 서울중앙지검 제3차장검사가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룸에서 과거 인권침해 사건 재심에 대한 접근방식 개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4.27 ⓒ 뉴스1 이호윤 기자
제주·광주 등 전국 지검도 재심 청구 속도

검찰의 '적극 재심'은 전국 검찰청 단위로도 이뤄지고 있다.

'제주 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수단)은 지난 14일 일반재판 수형인 20명에 대한 제35차 직권재심을 법원에 청구했다. 대검은 2021년 11월 광주고검 산하에 합수단을 꾸리고 제주 4·3사건 당시 불법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들의 직권재심을 추진 중이다.

제주 4·3사건 직권재심 청구 대상은 1948~1949년 두 차례 군법회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 2530명이다. 합수단은 2022년부터 직권재심을 청구해 현재까지 2211명의 무죄 선고를 이끌었다. 일반재판 수형인은 542명 중 462명, 군사재판 수형인은 1749명 전원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앞서 광주지검 순천지청도 지난해 11월 '여순·순천 10·19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법)에 따라 당시 불법 연행돼 사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이 여순사건 피해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한 첫 사례였다.

당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여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최초로 제기한 재심 청구이자, 여순 사건 특별법에 따른 첫 특별재심 청구"라며 "검찰이 해야 할 일이란 이렇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을 먼저 찾아내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지방검찰청이 28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 제주4·3 일반재판 수형인 10명에 대한 제1차 직권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2022.12.28 ⓒ 뉴스1 오미란 기자
"역할 성찰하겠다"…몸 낮추고 보폭 맞춘 검찰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과거 청산'에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 보완수사권 축소·폐지에 대해선 우려의 메시지를 내되, 인권침해가 자행됐던 과거 수사·판결에 대해선 고개를 숙이는 '낮은 자세'로 국민 신뢰 회복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실제 박철우 서울중앙지검장은 최근 검찰이 과거사 재심 청구와 무죄 구형에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은 왜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지 반성과 성찰이 먼저"(19일), "시대의 과오와 아픔을 정리해야 한다는 국민적 바람에 맞춰 법무부와 검찰도 주저하지 말고 스스로 성찰하고 변화해야 할 것"(26일)이라고 주문한 시점과 맞물린다.

이에 검찰은 향후 재심 개시 기각 의견을 냈더라도 법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경우엔 항고를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다. 또 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윤수정) 산하에 '재심 전담 수사관'을 배치하고, 재심 첫 기일에 증거관계와 구형을 검토해 신속한 심리 종결을 끌어내기로 했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단원으로 활동했던 김재윤 건국대 법대 교수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등을 보면 경찰도 잘못했지만 검찰도 공소유지 단계부터 사건을 더 면밀히 살폈어야 하는 아쉬움이 컸었다"며 "10월 공소청이 꾸려지면 과거사 진상조사를 재추진하고, 이를 발판으로 과거 검찰청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