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판사 위조지폐' 독립운동가 이관술 선생, 79년 만에 무죄
재판부 "불법 구금 통한 위법수집증거…판결이 위안 되길"
"역사적 과오 79년 만에 바로잡아…독립운동자 서훈해야"
- 유수연 기자
(서울=뉴스1) 유수연 기자 =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처형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선생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학암 이관술 기념사업회는 "사법부가 역사적 과오를 79년 만에 바로잡았다"고 평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현복)는 22일 통화위조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이 선생에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이었을 텐데 본안 심리를 거쳐 판결 절차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신 청구인과 변호인 측에 경의를 표한다. 중립적 입장에서 협조해 준 검찰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판결이 이 선생과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된 공동 피고인들의 자백 진술이 부당하게 장기화한 신체 구속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청구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현행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을 기초로 형성된 인신구속에 대한 조항을 이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공동 피고인의 진술은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자행한 불법 구금 등 직권남용죄 범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함이 명백히 인정된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주문을 낭독하자 법정에서는 방청객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선고 후 학암 이관술 기념사업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무죄 선고는 일개 형사 사건 재판을 바로잡은 판결이 아니다"라며 "해방 직후 국가 권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행정, 군대, 경찰, 사법 기구를 총동원해 허구의 범죄 사건을 구성하며 한국 현대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역사적 과오를 79년 만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재심 과정에서 엄격한 증거재판주의 원칙과 법리에 따라 무죄를 구형한 검찰의 판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법리적으로 쉽지 않은 이 사건에 대해 법과 양심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결단에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날 무죄 선고 판결은 광복 80년의 역사를 맞는 대한민국이 과거의 국가 폭력과 사법적 과오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며 "정부는 항일투쟁과 희생, 감옥 안에서도 이어진 교육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 그리고 이날 사법부가 선고한 무죄의 의미를 엄중히 받아들여 이 선생을 독립운동자로 서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선생의 외손녀 손 모 씨는 "80년 가까이 된 지금 대한민국에서 무죄를 내려 준 것에 감사드린다"며 "이 사건은 미군정이 정치적 입장을 지키기 위해 민중을 탄압한 첫 번째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흔적들을 모두 지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이 선생은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1946년 미군정기 경성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한국전쟁이 발발된 1950년 처형됐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이 선생 등이 조선공산당 활동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1945년 10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조선정판사 인쇄소에서 6차례에 걸쳐 약 1200만 원의 위조지폐를 찍었다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청은 남한 내에서 공산당 활동을 불법화했다.
손 씨는 2023년 7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지난 10월 "사건에 관여한 사법경찰관들이 공동 피고인들을 불법으로 가둬 확정판결이 내려졌다는 증명이 있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shush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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